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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밍크코트>, '이단‧존엄사' 묵직한 주제 팽팽한 긴장감 마당 | 2012/01/11 18:07




이단사이비 종교를 믿지만 쉬쉬하는 중년의 딸 현순은 혼수상태에 빠진 노모의 존엄사를 놓고 다른 가족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더 이상 가망 없으니 산소 호흡기를 떼자는 언니와 남동생에 맞서 절대 안 된다는 현순의 대립. 병원비 한 푼 내놓지 않으면서 목소리를 내는 현순이 뻔뻔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가 형제들과 대립하고 있는 이면에는 신의 계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굳이 이단사이비라 지목하지 않아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계시에 의지해 초현실적 상황만을 기대하는 현순의 모습은 그리 어색하지가 않다.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신앙이라기보다는 신념이 더 어울려 보인다. 

고단한 현실 속에 기댈 언덕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에게 종교는, 특히나 신비주의는 빠져들기 쉬운 매력이다. 딸을 시집보낸 후 홀로 우유배달을 하며 억척스런 삶을 살고 있는 현순에게 그런 종교는 유일한 위안이자 내면의 힘일 수밖에 없다. 

신이 내게 계시를 받는다는 생각은 어떤 우월함을 가져오면서 함께 현실이란 장벽을 순식간에 없애 버린다. 현순의 주장이 가족들에게 먹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강한 신념과 계시를 무시하면서 그의 말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환경은 현순의 목소리에 힘을 싣게 만든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순간적인 카타르시스일 뿐 현실의 장벽이 높음을 아는 순간 다시금 체념해 버리기도 하는데, 절대 안 된다고 버티던 현순의 기준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절박한 사정 때문이라는 것은 영화 속 의미 있는 반전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해소시키는 키워드가 사랑이라는 것은 긴 여운을 남긴다. 내리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만큼. 노모가 딸 현순을 향해 보내는 사랑, 현순이 출산을 앞둔 자신의 딸 수진에게 보내는 사랑. 외할머니가 손녀 수진을 통해 현순에게 보내는 사랑 등은 ‘밍크코트’를 매개로 모두를 아우르며 상처를 덮는다. 

마지막까지 존엄사를 택하려던 외삼촌과 이모의 생각에 동의했던 수진이 갑자기 돌변해 현순의 입장을 돕는 것도 이런 가족 간의 사랑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갈등의 틈새를 메우고 복잡하게 엉켜진 실타래를 한 순간에 풀어내는 위력을 발휘하는 사랑은 몽환적이면서 상상적인 결말로 <밍크코트>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주요 영화제서 인정한 빼어난 연출력과 연기의 조화 



이단사이비, 존엄사 등을 주제로 한 영화 <밍크코트>는 묵직한 단어들만큼이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등장하는 배우들이 풍기는 인상 또한 그 무게감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병원의 분위기 역시 칙칙하게 보이는 게 그런 기분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처음의 무게감은 점차 잊혀 진다. 대신 활시위를 한껏 당겨 놓은 듯 팽팽한 긴장감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은 채 끌고 가는 이야기 전개는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기분마저 갖게 했다. 감독의 연출력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영화를 상징하는 무게 있는 단어들만큼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묵직한 게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던데, 영화를 보고 나서 흡족한 표정을 짓게 만든 것도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자연스럽게 손뼉을 마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영화를 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청했는지, 서울독립영화제가 왜 이 영화를 대상작품으로 선정했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웰 메이드 독립영화의 매력을 확 안겨줄 만큼, 신아가 이상철 두 젊은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알맞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은 만족감을 안겨줬다. 새해 독립영화의 저력을 보여줄 작품으로 충분히 기대할만한 영화였다. 1월 1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