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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하며

목사 이근안? 질 떨어진 한국 교회의 슬픈 현실 오늘을 생각하며 | 2008/11/13 15:07

목사 안수 받는 고문기술자 / ⓒ 브레이크 뉴스 정연우 기자



자질 안된 목회자들과 벌이던 멱살잡이의 기억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덕에 참 훌륭한 성직자들과 목사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에 있어 큰 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훌륭한 인품의 성직자들을 만남은 내 영혼을 살찌웠고, 삶의 지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때때로 자격 안된 목회자들을 보며 씁쓸했던 기억도 여러번 있었다. 기본적인 자질이 부족했던 그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교회의 기억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늘 좋은 사람만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이고,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도 생각했지만 상황에 따라 나의 태도는 현저히 달랐다. 

전자의 분들을 만났을 때는 교회 생활이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후자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면 나는 교회에서 종종 투사로 돌변하고는 했다. '미친 운전사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끌어내려야 한다'는 본 회퍼 목사님의 말을 떠올리며, 2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 나는 종종 파이터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볼 때 아무리 봐도 자격미달인 사람들이 목회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벌이는 전횡을 가만 두고 보고 있기는 힘들었다. 박종철 열사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위선'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내 기준은 무엇이었냐고? 나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단순하게 표현해 '좋은 게 좋은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 생각의 차이는 많겠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대다수를 폭넓게 아우르며 보조를 맞출 수 있다면 좋은 것이었다. 그리고 '성직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기초적인 맡겨진 역할만 충실히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간혹 만나는 자격미달들은 이런 기준에 현저히 미흡했다. 차이를 인정하기 보다는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고, 신앙의 다양성조차 자기 기준만 옳다며 떠들고 있었다. 상처 주는 말은 기본이요, 정제되지 않은 표현과 섣부른 행동 등 저런 사람이 왜 성직자가 되려는지 이해 안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들은 말 뒤집기도 예사였다. 간혹 불리한 말은 오해니 누군가 곡해했다느니 절대 그런말 한적 없다느니 하는 뻔뻔함까지. 증인이 여럿 있음에도 말이다. 

인성과 영성훈련이 안돼 있는 그들에게 나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었다. 

"예수 팔아서 밥 빌어먹고 사는 XX들" 

그런 사람들과 맞부딪히던 나의 명분은 이런 것이었다. 결코 자질이 안 되는 그들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낙심시킬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 보자는 것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된 통 한번 혼나게 되면 혹시라도 정신을 차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강했다. 

자질이 부족했던 그들은 간혹 목회자로서 조심해야 할 표현들을 거침없이 해댔고, 나는 절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육두문자와 멱살잡이는 기본이었고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주먹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저돌적으로 맞섰다. 나 역시도 자질 부족한 평신도였지만 그들도 내게 목회자가 아닌 그저 나와 비슷한 수준의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 곳이 아무리 교회 안이라 할지라도. 

실랑이가 잦아들면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꼭 전달했다. '목회자하지 말고 차라리 딴 일을 찾아 보라'고. '당신 같은 사람이 목회자라는 것은 한국교회 개망신 시키는 일'이라고. 

고문기술자도 되는 목사, 대학원 못마친 내 친구는 10년째 전도사 

간증을 하고 있는 이근안씨 동영상




악명 높은 전직 고문기술자가 '목사'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순간적으로 어느 높으신 장관님이 국정감사장에서 뱉으신 단어와 함께 이런 말이 맨 먼저 튀어 나왔다. 

"XX! 목사값 똥값 됐네" 

그리고 십수년 전의 수준 안되던 목회자들과 싸우던 모습이 떠올려졌다. 자질이 안되는 자는 스스로 주제를 알아야 하거늘, 분수 모르고 설치는 자들 때문에 왜 한국교회와 목사님들의 위치가 조롱당해야 하는지 불쾌했다. 

'차라리 딴 일을 찾아볼 것이지, 한국 교회 망신시키려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목사가 된 전직 고문기술자는 '목사는 개나 소나 말이나 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사람 덕분에 목사란 호칭이 갖는 값어치는 그만큼 떨어졌다. 솔직히 이근안씨 앞에는 목사란 호칭보다는 특별히 '먹사'라는 호칭을 붙여 구분하면 안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자질이 안되는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갑갑했다. 

사실 고문기술자가 당당하게 목사가 됐다는 것은 개신교 성직자들의 질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인 자질이 안되는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있는 구조는 이 땅의 기독교가 개독교로 비하되는 중요 원인 중 하나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근안씨는 그것을 확실히 확인시켰다. 성직자가 아닌 목사 생산 공장의 모습인 한국 기독교의 허술한 실태도 함께. 

감옥에서 통신으로 공부해도 목사가 될 수 있는 시대, 학부를 마치고도 대학원을 마치지 못해 아직도 10년 넘게 전도사에 머물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는 바보나 다름없었다. 

영성이나 인성은 아랑곳 없이 현저한 자격미달자에게 거리낌없이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일부 교단을 보며 나는 속된 말로 쪽 팔렸다. '목사는 예수팔아 밥 빌어먹고 사는 인간'이라는 나의 독설을 그들은 정설로 만들어 줬던 것이다. 

고문기술자들에게 안수를 줬다는 목사들의 자질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을 걸러내지 못하다니, 고문기술자로 수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으면서도 간증을 통해 자기변명만 일삼는 저가 진정 반성했다고 보는 것인가? 이근안의 목사 안수를 심사해 결정한 자들의 수준이 한심스러웠다. 

한편으로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고문기술자가 동격으로 불려진다는 것이 서글프기까지했다. 목사의 자격기준을 엄격히 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이 앞으로 계속 되풀이될 일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수치 드러낸 목사 이근안씨 

이근안 목사 취소 아고라 서명



다음 아고라에 올려진 이근안 목사 취소에 서명을 하며 난 이렇게 썼다. 

'이근안 넌 목사가 아니다. 괜히 한국교회 욕 먹이지 말고 그마해라! 당신이 목사라는 것은 기독교의 수치다.' 

그가 간증을 할 때마다 얼마의 사례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근안에게 목사라는 타이틀은 밥벌이 수단일 뿐이다. 그의 입에서 간증이라는 것은는 자기 변명이며 합리화일 뿐인 것이다. 

이근안이 진정 이전의 행동을 반성하는 마음이라면 조용히 목사직을 내려놓고 이름없이 빛도없이 묵묵히 어려운 자들을 도우라고 권고한다. 간증이란 이름으로 앞에 나서는 일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그간의 죄과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고 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교회의 반성도 촉구한다. 목사로서 함량미달인 자를 목사라 불려지게 만드는 오만, 대체 뒷감당을 어찌하려는 것인가! 


-목사가 됐다는 고문기술자를 보며 십수년 전 혈기왕성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다시금 그 모습을 재현해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독교 소리 들을 일만 골라서 하는, 그래서 다시금 나를 파이터로 만들려고 하는 한국 교회가 너무하기만 하다.ㅠ.ㅠ 난 정말 조용히 살고 싶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