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을 생각하며

긴박했던 탄생, 민중의 벗으로 온 예수 오늘을 생각하며 | 2009/12/24 12:27

'팍스 로마나' 이룬 케사르, 식민지 땅 팔레스티나 

로마 제국이 설립될 당시의 지도


[제정 로마의 식민지 팔레스티나] 때는 기원전. 칼과 창을 앞세워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이룬 케사르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제정 로마의 초대 황제로 등극했을 때였다. 당시 팔레스티나 땅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그 땅 백성들은 식민지 백성을 비애를 처절하게 느끼며 제국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제시대 겪었던 고통과 별반 다를바 없는 처지였다. 


절대 권력을 장악한 케사르는 '모든 백성은 자기 고향으로 가서 다 호적을 하라'고 명한다. 호적을 하라는 것은 기본적인 목적이 있었다. 핵심은 세금 부과와 강제 징집이었다. 권력을 장악한 제국의 황제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고 젊은이들을 병사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지엄하신 황제의 분부 앞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힘없는 백성들은 호적을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황제의 명을 받을어야 했다. 

2000년 전 예수 탄생의 정치적 배경은 바로 이 식민제국을 통치하던 로마 제정 시대였다. 하지만 주무대는 식민지 팔레스티나 땅, 그리고 가장 보잘 것 없는 예루살렘의 작은 동네 베들레헴. 거기에 청년 요셉과 출산을 앞둔 그의 아내 마리아가 있었다. 갈릴리 청년이었던 그는 호적을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선 것이었다. 

가장 낮은 공간, 보잘 것 없는 자리, 허접한 장소 

예루살렘 베들레헴이 예수탄생 교회/ⓒencyber



[마굿간에서 탄생한 아기] 요셉은 계속 안절부절이었다. 호적을 위해 아내와 함께 찾은 고향 동네였지만 모든 여관은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산기가 있는 마리아는 진통을 호소하는데, 가는 곳마다 방은 없다고 하고, 길거리에서 아이를 출산할지도 모를 다급한 상황. 그의 마음은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빈방 없습니까? 빈방 없습니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지만 나오는 답은 한결 같았다. 

"빈방 없어요!" 

사정이 딱하게 보였는지 겨우 한 집만이 안타깝다는 듯 "빈공간이라고는 마굿간 밖에 없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릴 뿐이었다. 

어쩌겠는가.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닌 것을. 길바닥만 아니라면 어느 곳이든 들어가야 했다. 비록 말똥 냄새가 풍기는 지저분한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거리에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아니던가.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고 얼마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통을 시작한 마리아가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한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뉠 자리가 마땅치 않아 강보에 쌓인채 말구유에 누워야 했다. 

가장 낮은 공간,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리, 짐승들이 머무는 허접한 장소에서 예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곧이어 근처의 목동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는데 꿈에서 누가 이곳에서 아기가 태어났으니 가보라 했다'며 아기를 보고 기뻐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잇따라 동방의 천문학자라는 사람들도 별을 보고 찾아왔노라며 마굿간에 나타났다. 큰 별을 따라 왔다는 그들은 별이 이 곳에서 멈췄노라며 아기를 본 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는 떠나갔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반역의 싹을 잘라야 한다!' 

예수 시대의 팔레스티나/ⓒ위키백과사전



[아기의 생명을 노리는 권력] 그러나 아기 탄생 정보가 지역의 권력자들에게까지 알려지며 음험한 그림자 또한 드리워지고 있었다. 별을 따라오던 천문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서며 그 곳을 다스리는 헤롯왕을 찾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로마 황제의 명을 받들고 있던 헤롯왕은 어느날 뜬금없이 찾아온 천문학자들을 맞으며 기겁해야 했다. 황당무개한 듯하지만 범상치 않은 학자들이 '왕의 탄생'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것 같은데, 혹시 어디서 난 줄 아십니까? 우리는 별을 보고 따라왔는데 그에게 경배하고 싶습니다" 

'유대인의 왕?' 왕은 황제 하나인데, 식민지로 다스리고 있는 유대인들의 왕이라니, 이는 분명 반역을 일으킬 인물이 태어났다는 말이었다. 

예루살렘 전체에 소동이 일어났다. 헤롯은 휘하들에게 모든 자료를 분석하라 명했고, 그 장소가 어디쯤인지 유추해 보라고 했다. 학자들은 옛 문헌을 뒤적이더니 베들레헴을 유력하다고 보고했다. 

오래전 예언서에 기록된 내용이 근거였다.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족속 중 가장 작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 

박사들에게 이 내용을 알려주며, 헤롯은 슬쩍 그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반역의 싹을 없애기 위해 꾀를 낸 것이었다. 

"그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시고 내게도 알려주시오. 그러면 나도 그 아기를 찾아가서 보고 싶소" 

헤롯의 친절에 박사들은 알겠다고 감사인사를 전하고는 떠나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는데도 박사들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꿈속에서 헤롯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박사들이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간 탓이었다. 

포악한 권력의 만행,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는 모두 죽여라!" 

총으로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가 저지른 80년 5월 광주의 만행ⓒ5.18 기념재단



[피의 살육] 요셉과 마리아가 황급히 이집트로 떠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아기를 안고 갈릴리 땅 나사렛으로 돌아갔는데, 꿈에 나타난 천사의 목소리는 다급하기만 했다. "아기가 위험하다. 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것이었다. 긴급함이 담긴 메시지였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마음이 불안했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 겪은 일들이 떠올랐다. 아기의 탄생 소식을 어딘선가 알고 찾아온 사람들. 그들은 아기를 경이롭게 바라보지 않았던가!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그 즉시로 짐을 챙겨 밤중에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이집트. 꿈에서 천사가 지시한 곳이었다. 그가 떠난지 몇 시간 안 돼 일단의 병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뒤늦게 박사들이 몰래 돌아갔음을 깨달은 헤롯은 분노했다. 그렇다고 그냥 유야무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왕이 태어났다지 않는가! 식민지를 해방시킬 반역의 싹이 돋는 것인데 이는 범상히 넘길 일이 아니었다. 즉각 명을 내렸다. 

"박사들이 나타난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을 포함해 그 모든 지경안에 주변에서 태어난 2살 이하의 사내는 모두 죽여라!" 

한바탕 피의 살육이 시작됐다. 아기가 있는 집에는 병사들이 어김없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80년 5월 광주학살과 같은 참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권력의 잔인한 행태는 미래의 왕을 없애겠다는 명분으로 어린 아기가 있는 집에서 통곡이 나오게 만들었다. 아기를 빼앗긴 집들마다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미친 권력의 포악성 앞에 식민지 백성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그저 애통의 굵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제왕의 운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 권력자들이 음험한 흉계로 죽이려 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2000년 전 예수 탄생 때부터 생겨났던 일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인류에게 희망이었지만 그 사실이 권력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애꿎은 아기들이 피해를 입어야 했다. 


메시아, 위협을 뚫고 노동자 빈민의 아들로 등장하다 

2000년 전 예수 탄생 사건은 이토록 드라마틱했다. 식민지 지배체제 아래 핍박당하던 팔레스티나의 가난한 목수 노동자는 번듯함과는 거리가 먼 형편없는 공간에서 자신의 아이를 낳아야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엄습한 죽음의 위협을 피해 멀리 외국땅으로 망명생활을 떠나야 했다. 아이를 향한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메시아로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세상에 등장하던 순간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육신의 아버지는 평범하고 이름없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학식있고 유려한 집안도 아니고, 왕족이나 성직자의 집안과도 거리가 먼 가난하고 딱히 드러낼 것 마땅치 않은 민중의 모습이었다. 애 낳을 장소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말똥 냄새 나는 마굿간의 말구유라도 감지덕지 해야하는 필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위태한 현실앞에 아슬아슬한 순간만이 잇따르고 있었다. 권력은 그를 끊임없이 위해하려했고, 그의 존재를 느끼며 부담을 갖고 있었다. 권력의 안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없애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2000년 전 예수 탄생의 의미가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의 친구, 억눌린 민중의 해방자로 오신 예수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시작한 예수는 지금으로 따지면 별 볼 일 없는 변두리의 날품팔이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다름없었다. 

도시에서 번듯한 여관방 하나 잡기 어려웠던 그들은 간신히 노숙자들이 머무는 창고 같은 곳에서 아이를 출산했던 것이고, 두꺼운 종이 박스 위에 아기를 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권력자들이 예수를 미워하며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그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듯, 현재의 권력도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살인마저 서슴치 않았다. 

상고 출신 대통령은 더러움이 가득한 기득권 세력들의 흉계에 목숨을 잃었고, 그 밑에서 서민적 삶을 추구했던 전직 총리는 권력의 사냥개들이 어떻게든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고 있는 형국이다. 

용산의 망루위에서 삶을 호소했던 민중들은 권력에 화형당한채 장례마저 못 치르고 1년을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다.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바로 이런 사람들 속에서 그가 태어났다는데 있다. 연약한 이들을 보듬기 위해 부유한 자들이 아닌 돈없고 힘없는 서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민중의 친구였고, 억눌림 당하는 자들의 편에 섰던 진정한 해방자였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사건을 반기게 되는 이유다. 

척박한 용산 현장과 화려한 대형교회 놓고 예수의 발걸음은 어디를 택할까? 

그런데 당시 '하나님의 종'이라 떠들던 성직자들은 권력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개차반으로 대했다. 예수를 무시하고 멸시하는데 가장 앞장선 무리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권력과 결탁한 그들은 훗날 메시아를 왕을 사칭하고 변란을 꾀한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 사형을 시킨 주범이었다. 

2009년 한국의 대통령은 장로라고 하는데, 예수의 삶을 따르려는 자들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강남의 어느 교회는 2100억을 들여 교회 건물을 짓는단다. 용산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건만, 힘으로 밀어붙이는 권력의 불도저에 신음하는 사람과 자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건만, 하나님이 아들을 따른다는 자들의 목소리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권력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이 땅에 오신 예수, 2009년 한국 사회에 그가 계시다면 자신의 생일날 어디를 택할지 궁금해진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척박한 용산의 현장과 화려함이 넘치는 권력과 가까운 대형 교회의 아늑한 공간 중 그가 택할 곳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그는 자신을 따르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갖고 있는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오라는 사람이었기에... 


2009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성탄 예배 
●일시 : 12월 25일 오후 3시 
●장소 : 용산 4지구 참사 현장(남일당 앞) 
●말씀 : 권오성 목사님(NCCK 총무) 
●성례전 : 최은식 신부(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친교와 나눔 : 조정현 목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