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은 유구무언이라 했다. 전쟁에 진 장수는 용서 받을 수 있어도, 경계를 소홀히 한 장수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군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개념이지만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 군에는 이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10일 발표된 국방부 장성 진급 인사에서 천안함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육군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했다. 천안함 당시 합참 작전부장으로 근무해 근신 처분을 받았던 김학주 소장이 3성 장군으로 진급해 군단장에 보임된 것이다.
군이란 곳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그 진급 심사가 까다로운 곳이다. 높은 자리일수록 한정된 보직에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문은 바늘구멍 수준이다. 장성급의 경우 계속 진급하지 못할 경우 정년으로 옷을 벗어야 하기에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대령이 별을 다는 것만큼이나 별 개수가 늘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세심한 심사를 통해 진급자가 가려지는 것이기에 작은 흠결 자체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데 경계를 소홀히 한 것이 인정돼 징계를 받은 장수가 전역은커녕 무려 진급까지 해서 군단장으로 나가는 모습은 일개 사병 출신의 시선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방부가 밝혔다는 해명은 우습기만하다. ‘이미 몇 차례 진급에서 불이익을 당했고, 동기생 중 선두주자로 우수한 인재’이기 때문이라는데, 마치 군에 인재가 그리 많지 않다고 변명하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위관급이나 영관급도 아닌 장성급 인사에서 징계까지 받은 인물이 진급하는 것을 보면 군대에 쓸 만한 인물이 그리도 없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유능한 인재라도 음주운전 경력 때문에 승진에서 탈락하거나 내정된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인사 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흠결이 발견되면 원칙을 우선시 했다는 것이다. 비록 안타까운 사정이 있고 봐 줄만한 사안이었더라도 기준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징계 장성 자리 배려에 진급까지 시키는 이상한 정부
이번 국방부의 인사를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천안함 문제에 대한 군 수뇌부의 인식이다. 여기에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포함된다.
당시 정부(국방부) 발표대로라면 우리 군은 적의 침투를 알지 못했고, 은밀히 침투한 적은 일격에 우리 군함을 침몰시키고 도주했으며, 이 과정에서 46명의 장병이 전사하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 발표가 맞다면 군 지휘 책임자들은 단순히 문책성 징계를 떠나 경계 소홀에 대한 혹독한 책임을 물었어야 마땅하다. 일부 고위급 군 관계자들이 직에서 물러나는 것과는 별개로 46명이 희생될 만큼 소홀했던 경계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인사를 통해 이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흘러가고 있는 과정을 보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만큼의 조치가 된 것인지 의문이다. 군이 후속조치로 내렸던 징계와 이후 인사 문제가 그렇다.
관련 지휘관들에게 징계 조처를 내렸다지만, 실질적 지휘 책임이 있던 2함대 사령관-함장- 전대장 등은 현역으로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당시 2함대 사령관이었던 김동식 제독에게 해군은 최근 복무 적합 판정을 내렸다.
합참 지휘관으로 있던 장성은 이번처럼 진급까지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징계 대상으로 꼽히다 징계 발표 전에 전역한 김기수 전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해 9월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에 임명되기까지 했다. 지휘 책임이 있어 징계를 해야 했던 인물에게 도리어 자리 배려를 해 준 모양새다.
또한 징계를 받은 지휘관 중 9명은 항고를 통해 3명이 무혐의 처분됐고 2명은 감경됐다. 4명만 기각돼 징계가 확정됐을 뿐이다.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는 언론인들 /ⓒ오마이뉴스 유성호
천안함 의문만 키워주는 군 인사, 병역 미필 대통령의 무지? 천안함 사건의 비중을 놓고 볼 때 군의 행태는 상식 밖이다. 마치 그간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여론을 눈속임한 것처럼도 보인다. 군 미필자로 군에 대해 무지한 대통령의 수준이 군 인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군의 인사를 통해 보는 천안함 사건은 은밀히 침투한 적에게 당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사고로 치부되는 것 같다.
경계 소홀로 부끄럽고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사람들을 인재 운운하며 진급시키고, 배려까지 해 주는 태도를 보면, 여러 의혹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군이 당시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 지나친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각종 의문에 대해 국방부가 마치 군 인사를 통해 에둘러 시인하는 것처럼도 보이기도 한다. 천안함이 적의 공격으로 당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국방부가 키워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식의 인사를 하면서, 정부의 조사 발표를 불신해 천안함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군의 태도가 과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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