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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하며

소중한 인연 <시사투나잇>, 폐지에 마음 칼을 벼리다 | 2008/11/14 22:43



마지막 방송하던날 '시사투나잇' / ⓒ 전관석


'딩동!', 소리와 함께 답신이 들어왔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감사합니다 - ㅜ' 

우는 표정이 담긴 마지막 표현(ㅜ), 마음속 깊이 속상함의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감정이 설핏 전달돼 오는 기분이다. 속상하겠지, 속상할 것이다. 아니 어찌 단순히 속상하기만 하겠는가! 나같은 사람도 분노하고 싶은 기분인데... 

보낼 수 있는 성원이 간단한 문자 하나라는 것이 괜히 무기력했다.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표현이라던가? '지못미, 지못미, 시투 지못미!'  몇번을 되뇌었다. 

뉴스 외에는 TV를 보지 않는 내가 '시사투나잇'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이야기만 들었을 뿐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6월의 어느날 나는 늦은 시간 일부러 그 프로그램을 기다렸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내가 출연을 결심한 유일한 프로그램 시나투나잇. 출연이 뭔지 스치는 듯 봤던 '시사투나잇'은 이후로 며칠간 나를 반짝 열혈 시청자로 만들어 놨다. 오직 시나투나잇만을 보기 위해  늦은 밤 TV앞에 앉아있었고, 인터넷 다시보기도 열심히 뒤적거렸다. 

KBS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니!, 생각이 드는 것이 너무 반가웠다. 덕분에 간만에 TV보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시나투나잇'을 통해 회상했던 87년 6월 

당시 '시사투나잇'은 6월항쟁 20년을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한통의 쪽지가 날아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kbs 시사투나잇팀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들어온 쪽지는 6월항쟁과 관련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이지희 피디라고 했다. 

'6월항쟁 특집을 방송하는데 혹시 당시 참가자로서 인터뷰를 해 주실 수 있는지 문의드립니다.' 



나를 취재했던 시사투나잇 이지희 피디 / ⓒ 남소연

시사투나잇은 그해 6월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었던 '6월 항쟁'을 이야기 해 달라는 요청. 나의 과거가 드러난다는 것에 망설임이 생겼지만 한참을 고민하다 수락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한 곳 정도와는 이야기를 나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6월 항쟁 수기를 공모하고 있었고, 87년 6월 당시 고2였던 나는 노트에 적어 놨던 기록을 토대로 6월 항쟁 경험담을 적어 기사로 송고했다. 

그 기사가 뜬 이후 몇군데의 방송사들로 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다는 것에 상품성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6월 항쟁에 참여한 수백만 중에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괜히 내가 조명된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몇 군데 인터뷰를 거절했었는데'시사투나잇'은 그 마지막 요청을 해 오고 있었다. 방송시간대가 늦은지라 왠지 많은 사람이 보지는 않을 것 같았던 생각에 '그래 이번 한번은 하자' 결정한 것이었다.


2007년 6월 6일 명동성당. 오후2시 이지희 피디를 만나 1시간 정도 87년 6월의 기억을 회상했다. 방송은 바로 그날 저녁 나간다고 했다. 

촬영을 하며 몇가지 부탁을 했다. '최대한 편집해 짧게 내보내달라. 1분 넘어가지 않고 30~40초 정도면 좋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도록 최대한 늦게 방송됐으면 좋겠다' 

이지희 피디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상하시네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늦게 하면 누가 보냐, 분량이 짧게 나가면 어떻게 하냐 길게 내보내달라' 말하는데 정 반대로 말하시는데요?" 

TV에 나가는 것이 꺼림직했던 나는 나름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길게 나가면 프로그램이었으면 아예 인터뷰도 안했을 겁니다. 늦게하고 짧게 나가는 것 같아 응한 것이니까 잘 좀 편집해 주세요" 

이 피디는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방송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갔다. 30~40초 정도 짧게 나가길 원한 분량은 2배 가량이 됐고, 더구나 다음날 아침 방송에도 나가다니! 

그런 구조를 전혀 몰랐던 나는 '나를 본 것 같다'는 사람들에게 '절대 내가 아니라고' 잡아떼느라 애 먹어야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렇게 나마 20년 전 6월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속시원했다.  KBS에 '시사투나잇'이라는 프로그램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6월 항쟁 당시 초등학생이었다는 이피디는 내 기사를 꼼꼼히 읽어왔고, 참 진지하게 제작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해 왔고, 하나의 장면을 더 내보내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자료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었다. 

그 덕분에 '시사투나잇'은 내 머리곳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열정적인 피디의 모습과 함께. 

세상이 바로 서는 날 시사투나잇은 부활할 것 



'시사투나잇' 폐지 항의 시위를 벌이던 제작진 / ⓒ 남소연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흘러 그 '시사투나잇'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냥 기분이 착잡했다. 아까운 프로그램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이 너무나 속쓰렸다. 내가 그들에게 도움될 수 있다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또한.  

마지막 방송 장면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접하고, 이지희 피디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가 날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이 바로 서는날 시사투나잇은 부활할 것입니다. 좌절하지말고 힘내시길~/6월항쟁 특집 출연자' 

'한국방송 교양정보팀 프로듀서 이지희'라고 적힌 명함을 보며, 이 분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가게 될까 ?생각하는 순간 '딩동!', 소리와 함께 답신이 들어왔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감사합니다 - ㅜ' 

착잡해하는 그들에게 온 맘을 담아 소리없는 성원을 보냈다. 

'슬퍼하면서 마음을 날을 벼리세요. 반드시 세상을 향한 당신들의 목소리가 다시 살아날 그날이 올 것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보려했던 시사투나잇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인 사유로 '시사투나잇'이 없어질 만큼 거꾸로 가는 세상을 보며 나는 오늘도 마음의 칼날을 한번 더 벼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