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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하며

공의를 외쳤던 벽안의 성자 대천덕 신부 오늘을 생각하며 | 2008/08/28 01:30




르우벤 아처 토레이, 대천덕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불교도들의 항의 집회가 있던 날, 나는 대천덕 신부님을 떠올렸다. 

불교계의 규탄집회에서 기독교의 편향된 모습을 성공회 신부님이 대표로 사과했 듯, 그 역시 성공회 신부님이었다. 

그러게.. 지난 8월 6일은 그분이 돌아가신지 6년 째 되던 날이기도 했다. 

한국명 대천덕. 미국명 Reuben Archer Torrey 3세. 

1918년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청소년기인 1933~34년까지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중국 연경대학(Yenching University), 데이비슨 대학(Davidson College; 남침례 신학교),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y Seminary)에서 공부했으며, 남부 대학(University of the South; 성공회 신학교)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46년 2월 2일 성공회 사제서품(조지아 교구)를 받았다. 

1942~1947년까지 단속적으로 선원생활도 했던 그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57년이었다. 그는 1957~1964년까지 성미카엘신학원(현 성공회대)을 재건립했고, 원장으로 봉직했다. 

1965년 강원도 태백(당시 삼척) 하사미의 외나무골로 들어간 그는 그 곳에 수도원 공동체 '예수원(Jesus Abbey)'을 설립한다. 초기 12명과 함께 산비탈을 개간했고, 이후 평생 노동과 기도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공동체로 키워낸다. 말년에는 원장의 위치도 내려놓고 설립자의 위치로서 예수원을 위해 헌신했던 그는 2002년  5월 쓰러졌고, 그해 8월 6일, 84세로 영면한다. 

한국을 존중했던 벽안의 신부 

한 미국인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이전에 보인 말과 행동들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교회에 꽤 이름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가 설립한 예수원은 지금 한해 1만여명의 방문하는 공동체로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10년 전 그 분이 만들어 놓은 태백의 수도원에서 잠시 함께 살았었고, 그 후로 이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공회는 개신교에 속한다. 간혹 예배 의식이 카톨릭과 같아 혼동하는 분들이 계시더라.) 

벽안의 신부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시기였다. 성공회대가 자리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항동에서 성미카엘신학원(현 성공회대) 재건을 위해 정착한 그는 마을 사람들과 융화를 위해 철저히 한국 전통을 존중했다.  

상을 당한 집에 가서 두건을 썼고, 우리 전통 예법에 따라 베옷을 입으며 같이 아파했다. 미국식 기독교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민을 존중하는 그의 모습에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




이같은 태도는 예수원을 설립한 강원도 태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해지는 일화 하나. 

어느해 예수원에 살던 청년들이 부근 마을을 지나다  마을 주민들이 꾸며 놓은 '성황당'을 보게 됐다. 그들은 예수원에서 기한을 정해 놓고 수도 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우상숭배'라고 생각한 이들은 성황당을 과감히 훼손했다. 

하지만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그들이 대천덕 신부에게 들은 것은 꾸지람이었다. 대천덕 신부는 직접 마을 주민들을 찾아갔고, 정중히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노라고 말하면서. 

미국에 가서 스님들 비하하는 말을 하는 어느 목사와는 전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성황당에 사과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 

미국인이었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도와 아랍을 공격하는 미국의 모습에 비판적이었다. 아랍을 폭격하는 미국의 행동에 "미국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만의 땅이 아니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어느 한쪽의 땅만이 아니기에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산물 땅은 하나님의 것이지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논리는, 뒤에 언급할 그의 토지사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부분이다.   

최근 촛불시위 발언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나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도 때때로 대천덕 신부님을 회고하며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목회자들이 예수원이나 책을 통해 대신부님의 영향을 공공연히 받기도 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들 목회자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교회의 문제점을 매섭게 지적하는 사람들 또한 모두 대천덕 신부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대천덕 신부라는 분이 교회적으로 워낙 큰 인물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으로 끼쳐진 영향이 작지는 않겠지만, 구분해 본다면 앞선 목회자들은 주로 종교적 영성 등과 관련해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고,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토지를 통한 불로소득은 도둑질, '헨리 조지'를 소개하다 


대천덕 신부님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헨리 조지'를 소개한 인물이기도 했다. 경제학을 전공했거나 토지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헨리조지는 1839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경제학자다. 


명저 <진보와 빈곤>을 통해 '모든 지대는 도둑질'이라고 규정하며 토지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이 고민한 사람이었다. 땅으로 얻는 불로소득에 막대한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것이 헨리조지의 사상의 핵심이었다. 

대신부님 또한 헨지조지의 사상을 적극 지지하던 '조지스트'였고, 이 분야의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에 입각해 '자연에 의해 생겨난 땅은 하나님의 산물이기에 인간이 그것을 통해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대천덕 신부님의 인식이었다. 

그래서 1984년 조직된 '한국헨리조지협회'의 결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과거 유시민은 그의 책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내용 중 '헨리 조지' 편에서 '헨리조지협회'가 종교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것에 대해 놀라워 했다. 

내막을 몰랐던 그는 헨리 조지가 신앙인이었다는 점을 결부시켰지만, 헨리 조지의 사상이 성경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토지정의시민연대'나 '성격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성토모)' 등이 바로 이 헨리조지협회의 다른 이름들이다. 

부동산 문제와 불로소득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바로 헨리 조지와 더불어 대천덕 신부님인 셈이다. (대천덕 신부 역시 토지문제와 관련한 책을 쓰기도 했다.)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도 바로 이 '조지스트'중의 한 사람이었다. 



대천덕 신부의 저서



<오마이뉴스>에 부동산 정책 관련 예리한 글을 올리는 이태경 시민기자나 김윤상  전강수 교수 등이 대신부님과 함께 토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연구했던 인물들. 


간간이 교계 목회자들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날리는 고영근 시민기자 또한 이들과 같은 멤버들이다. 

대천덕 신부는 생전에 항상 공의를 강조했고, 영성의 중요성과 함께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중요시 했다. 

그는 한국 목회자들이 교인보다는 돈을 먼저 생각하고 제대로 된 공의를 말하지 않는다며 늘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늘 가슴에 베를 달고 살았다. 한국교회의 잘못을 대신 회개하겠다는 의미였다. 

영양실조 걸릴 만큼 검소했던 신부 

한편으로, 대천던 신부의 일생은 늘 가난했다. 15년된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고, 작은 음식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이가 한입 베어물고 버리려는 깍두기를 재빨리 낼름 집어 먹던 이였다. (바로 앞에 앉았었기에 목격한 모습이었다. 난 그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했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신부님의 재빠른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특히 그는 자신을 '신부님'이라고 따로 부르지 않기를 원했다. 권위 자체를 스스로 내려 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저 예수원에 사는 사람들이 동일한 호칭(형제 자매)로 남녀를 부르 듯, 자신 또한 '아처 형제'라고 부르기를 원했다. 

(물론 간혹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풍습상 어른에게 존대를 안하기는 어려운 일, 그래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도 대신부님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가 하늘로 올라가기 3년 전이었던 1999년.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돼 한번 위험한 고비를 맞은 적이 있었다. 강릉에서 진단을 받다가 상태가 안좋아 급히 서울로 날아왔고, 바로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해야 했다. 

2000년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직후 대천덕 신부님



그 때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던 나는 그의 상태를 알고 나서 차마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시 82살이었던 그는 '영양실조'였다. 영양이 극도로 부족해지면서 가뜩이나 약한 심장 등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사실 예전부터 그는 '따로 먹고 싶은 것을 해 드리겠다'는 예수원 사람들의 배려를 단호히 거부했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는 항상 모두 함께 모이는 공동식사에 나와 먹었고, 자신만을 위한 음식은 사양했다. 모두가 어울려 사는 공동체에 자신만이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던 그의 곧은 성품 탓이었다. 

개인 자가용이 없었기에 태백에서 서울에 올 때는 늘 기차를 이용했고, 묵었던 곳은 종로5가 기독교100주년기념관 5층의 2만원짜리 숙소였다. 

떠받들려지기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 좋아하는, 그 교만이 극해 달해 오만한 발언이나 일삼고 있는 요즘의 일부 목회자들과는 아주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성공회 신자인 한화 김승연 회장과 빙그레 김호연 회장이 재산문제로 다툴 때 이들을 화해 시킨 것이 대 신부님었다는 사실은 내가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겸손하고 낮은 모습으로 살다간 사람이었다. 그래서 장례식이 열렸던 6년 전 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고 각자 오래전의 만남을 회상하며 헌화했다. 

너무나 다양했던 사람들, 이름난 정치인과 기업가들도 있었지만 가난한 소시민과 어렵게 하루하루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며 눈물 흘렸다. 

풀무원의 원경선 선생님부터 대신부님과 함께 살았던 초등학생까지 그를 추모하던 사람들은 모든 계층을 망라했다. 

정의를 말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는 교회


대천덕 신부가 잠들어 있는 작은 무덤

그분이 떠나가신지 6년. 최근 교회의 모습은 대 신부님의 이야기를 많이 떠올리게 만든다. 생전에 여러 교회와 목회자들은 그에게 존경을 표했고, 그를 보기 위해 예수원을 찾았다. 

그들은 여러 질문에 알맞은 답을 해 주던 대천덕 신부의 모습을 기억하겠지만 대신부님은 뒷편으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이야기 했지만, 다들 그 부분은 관심없이 지나치는 것 같다"며 웃으며 이야기 하고는 했다. 

'교회가 세상의 정의를 말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거나 도리어 방종하는 모습'이라는 대천덕 신부님의 지적. 

내가 그 분을 좋아했던 이유였고, 존경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개독교 소리를 듣는 교회의 모습과 종교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집회를 보면서, 그 분이 당시에 느꼈던 교회의 위기감이 내게도 깊이 스며들었다. 

교회가 교회 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다른 종교를 무시하며,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는 태도. 

과연 성경적으로 올바른 모습인지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제대로 고민해 봤으면 한다. 
대천덕 신부님을 알고 있고 그 분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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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성공회 부여나눔의집 2008/08/28 16:16 x
제목 :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
강원도 태백에 가면 단아한 영성공동체인 예수원이 있다.예수원을 설립한 대천덕 신부님에 대한 글이다.공의를 외쳤던 벽안의 성자 대천덕 신부
회게 2008/08/28 10:32 댓글 수정/삭제
잘 읽었습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22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삐딱이 2008/08/28 10:35 댓글 수정/삭제
교회와 성직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되새겨봐야 할 내용이네요. 
파르티잔 2008/08/28 22:24 수정/삭제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남을 존중하는 태도를 조금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jryu5 2008/08/28 11:10 댓글 수정/삭제
이런분이 계신줄을 이제야 알았네요
새로이 존경해야할 분인것 같습니다.
그 분의 뜻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졸겠습니다.
특히 자신이 교만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일부 목회자와 
신도들에게 진정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26 수정/삭제
저도 그렇게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많이 전해졌으면 좋겠는데,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적용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모습은 아닌 하네요. 안타까워요.
icandu 2008/08/28 11:36 댓글 수정/삭제
이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납니다.
왜 내 마음이 아픈지.
잘 읽고 갑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27 수정/삭제
저도 늘 청빈하게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아가려던 할아버지 생각하면 괜히 아리네요. 감사합니다.
kmmold 2008/08/28 11:50 댓글 수정/삭제
한국교회가 이분의 발뒤꿈치만이라도 닮아갈수 있다면 작금의 위기는 오지 않았을것이다....일전에 이분의 대중강연을 들었던적이 있었는데 말씀이 간단명료하여 오히려 사람들이 감동을 못하더라...그 만큼 우리가 조미료에 잘 버무려진 음식처럼 포장된 말씀에 길들여져 있다는것을 느꼈던적이 있다...대천덕신부님의 존재가 그립다 
파르티잔 2008/08/28 22:28 수정/삭제
할아버지 강의를 들어보셨군요^^ 강의도 참 잘하세요. 알기 쉽고 재밌게. 늘 그리운 분입니다.
chajmg 2008/08/28 12:29 댓글 수정/삭제
재물이 쌓이는 순간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목회자는 이미 사역의 사명을 잃고 신도는 이성이 마비
됩니다. 아마도 대천덕신부님이 아직도 살아계셨다면 
이명박정부 시작과 더불어 벌써 왕따되셨을 것입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29 수정/삭제
대신부님이 왕따되지는 않으셨을거예요. 이런 때 더욱 돋보이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그 존재감만으로도 교계 내에 무게가 크신 분이었거든요.
행복하기 2008/08/28 12:37 댓글 수정/삭제
대천덕이라는 분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 민초들이 이나라에는 더많이 살고 있습니다.. 사리사욕과 권력에 미친 소수의 개독들과 싸우며 말이죠..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건승하시길.. 
파르티잔 2008/08/28 22:32 수정/삭제
우리 할아버지에 대해 처음 아셨군요. 제가 소개한 것은 아주 미약한 일부분일 뿐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말씀대로 살려고 애 쓰셨던 분이지요. 공동체에서 그분과 함께 살았던 시간을 생각하면, 늘 행복합니다^^
김준성 2008/08/28 13:31 댓글 수정/삭제
좋은글 보고 갑니다. 
앞으로 기독교 이야기 나올때면 항상 기억하게 될것 같습니다. 
살아 계신분들중에도 이런 분들이 있을텐데... 아쉽습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34 수정/삭제
이렇게 살려고 애 쓰시는 분들 많을 거예요.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대신부님 같은 분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든든함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하니 2008/08/28 13:33 댓글 수정/삭제
하훈이 형님, 잘 읽었습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35 수정/삭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누굴까?했는데 이제야 알겠네^^ 혹 미국 누님이랑 연락하게 되면 내가 안부전하드라고 꼭 전해줘^^*
진짜와 가짜 2008/08/28 13:33 댓글 수정/삭제
조용기나 오정현이가 대천덕신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인기 영합을 위한 술수에 해당 합니다.
드들의 삶은 전혀 흉내도 안내지요.대천덕신부가 평생에 한 말씀, 조용기 목사네 하나님은 부자고 신부님네 하나님은 가난 하다고. 
파르티잔 2008/08/29 10:29 수정/삭제
대신부님이 상당히 폭 넓은 분이었기 때문에 대신부님에 관심 있는 목회자들이라면 부분적으로라도 조금씩 다들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조용기 목사도 대신부님 서울에 나오시면 극진한 대접을 하셨지만, 삶과 관련해서는 대신부님의 영향을 많이 받지 못하신 듯 합니다. 
secong1 2008/08/28 13:33 댓글 수정/삭제
훌륭하신 신부님 관련글 잘읽고갑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39 수정/삭제
정말 훌륭하신 신부님이셨습니다. 제가 지금껏 본 목회자들 중에 최고의 분이셨지요.
조용기이자슥아 2008/08/28 13:50 댓글 수정/삭제
조용기 먹사가 진정코 이 분의 영향을 받았으면, 그런 길을 가도 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노욕입니다. 이젠 쓰레기 조용기 먹사입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3:03 수정/삭제
대신부님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론'의 최고 권위자였습니다. 교리적으로 순복음교회와 코드가 비슷한 부분이기도 하지요. 이런 부분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영향이 부분적이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노욕은 사람마다 다 차이가 있더군요. 
그런 관점에서 대신부님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용기이자슥아 2008/08/28 13:52 댓글 수정/삭제
조용기 먹사가 그런 훌룡하신 분의 배움을 받았으면 그런 식으로 스레기가 되면 안될텐 데, 우리나라 물신을 숭배하는 대형교회 한기총 다 진정코 하느님 이름 파는 사탄입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44 수정/삭제
대신부님을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분들이 부분적인 영향만 받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대신부님은 늘 교회에 잘못에 가슴 아파하시며, 본인이 대신 회개하셨습니다.
chocine7 2008/08/28 15:08 댓글 수정/삭제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는 빨갱이죠?
그렇죠? 가난한 사람 만 아버지 나라에 갈수 있다면 푸로레타라아 천국이란 말 아닌가요? 
파르티잔 2008/08/28 22:48 수정/삭제
로마제국의 관점에서 볼 때, 체제 변란을 꿈꾸던 정치범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흉악범들만 사형시키는 십자가에 매달은 것을 보면. 
어찌됐든 예수님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압제당하는 민중들에게 진정한 이웃이셨습니다.
예수인 2008/08/28 15:52 댓글 수정/삭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49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ㅎㅎ 2008/08/28 16:25 댓글 수정/삭제
이게 대단한게 아니라 그저 정상적인 건데 
하도 사이비가 많으니 특별해보이는구료.
외국교회가면 목사와 성도의 구별이 거의 없는데
한국교회만 그러져.
그래서 목사교란 말이 나왔고
외국 목사들은 대부분 토리형제처럼 삽니다. 한국교회만 저런거죠 
파르티잔 2008/08/28 22:50 수정/삭제
그렇지요. 대신부님이 지극히 정상적이셨던 겁니다^^
kjikimjungin 2008/08/28 17:52 댓글 수정/삭제
한국의 개신교 신자및 목사들은 대신부님 발바닥 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자기이익위해 개신교끼리도 헐뜻고 할키지만 남의 종교도 존중할줄 알아야지 특히 조가 목사들 자기 자식에게 교회 물려줄려는 그런것들이 어디 목사냐...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수없는 더러운짓을 하느냐.
자기신도들을 상대로 사기친것 밖에더돼느냐.
목사님들 정신차리세요. 
파르티잔 2008/08/28 22:50 수정/삭제
저도 목사님들이 정신차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kjikimjungin 2008/08/28 18:08 댓글 수정/삭제
대신부님 감사합니다.
먼 이국땅에 오셔서 우리민족을 사라해주신 부자신부님.
한국개신교 목사들이 신부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목사들은 우선 자기배를 채우기위해 신도들에게 예수님을 팔아 사기치는것밖에 더됍니까.
특히 세계에서 제일크다는 교회조먹사 자기자식에게 교회 물려줄려고 별쑈를다하고 세계 어느곳에서도 없는 짓들을 다하는돼 과연 그들이 천국 갈수 있을까요.신부님 
파르티잔 2008/08/28 22:53 수정/삭제
대신부님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야기 하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자신 또한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며 늘 겸손하셨습니다.
roo7321 2008/08/28 18:45 댓글 수정/삭제
요즘같은 사회에 대신부님 계셨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시간 이후 부터라도 우리모두 먼저 가신분과 같이 초심을 잃지 맙시다.
타종교를 존중해야만이 자신이 믿는 종교도 존중을 받슴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54 수정/삭제
그러게요. 요즘 참 대신부님이 많이 떠오릅니다.
k01y01i 2008/08/28 18:59 댓글 수정/삭제
비록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훌륭한 성인의 행적은 모두에게 알려졌어야 함에도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적을 감추기에 급급하여 이러한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것이 몹내 아쉽기만 합니다 훌륭한 선지자의 행적을 가슴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러나 꼭 하고 싶은 말은 내 종교가 인정 받고 싶으면 타 종교의 숭고함도 인정해야 한다는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56 수정/삭제
대신부님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항상 경계하신 분입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태백까지 온 사람들에게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시오. 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오" 말씀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느별에서 2008/08/28 19:49 댓글 수정/삭제
언니 말 잘 듣는 어른들이 좋아~~라.
저 담주 지리산 갑니다. 
파르티잔 2008/08/28 22:57 수정/삭제
지리산 즐겁게 다녀오시길...^^*
사악한 박대리 2008/08/28 20:36 댓글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넙죽~

찬찬히 소개해 주신 덕에 또 하나를 배우고 갑니다. 이런 분이 계셨군요. 대천덕신부님 이야기도 잘 보고, 성공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이참에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군요.

역시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서, 가슴속에 쌓아두신 이야기들을 단물말 쏙쏙 빨아먹어야 하는군요 ^___^;

이번주도 정말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넙죽~ 
파르티잔 2008/08/28 22:59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남의 방도 자주 들려야 되는데, 제가 게을러 미적거리네요. 조만간 박대리님 방에 입장료 내러 가겠습니다^^*
영곤 2008/08/28 22:41 댓글 수정/삭제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되겠죠?
감사!! 
파르티잔 2008/08/28 22:59 수정/삭제
네 퍼가셔도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맑은 2008/08/28 23:00 댓글 수정/삭제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것들을보며 가슴이 많이 답답했는데
오랫만에 대신부님에 관한 글을 읽으니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싸워야겠지요. 민주주의를 위해서, 공의를 위해서. 
파르티잔 2008/08/28 23:06 수정/삭제
정의와 공의는 대신부님이 늘상 강조했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끝까지 나가시기 바랍니다^^*
김윤 2008/08/29 04:48 댓글 수정/삭제
신부님 생전에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분은 좀 더 오래 살아계셔야 했는데... 

답답한 교계의 모습을 보다가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신선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신부님께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왜 아름답지 못한지 아쉬울 따름입니다. 

파르티잔 2008/08/29 10:17 수정/삭제
저도 몇달이었지만 신부님과 함께 살았다는게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입원해 계실 때 신부님 간병하면서 며칠 붙어살았던 것도. 
교계가 온전한 모습을 보이길 바랄 뿐입니다. 저도 여러 목사님들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답니다.
roberto1015 2008/11/14 05:49 댓글 수정/삭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간 대신부님같은 소수의 사람들로인해 기독교가 아직까지 개독교가 아닌 기독교가 남아있다고 생각됩니다. 
kikilo 2009/01/26 11:34 댓글 수정/삭제
대신분님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해 그렇게 사셨을것 같은데 이글과 분위기는 어째 예수님보다는 대신부님 자체가 우상화되는 분위기네요..대신부님 덕분에 기독교가 더 욕먹는 분위기도 되어버리구요
이게 대신부님이 원하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