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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영화’의 작동 원리-[올드보이]의 감독은 누구냐?

목차

1. 기묘한 쾌감

2. [올드보이] 10주년 그리고 전설

3.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4. [올드보이] 창세기

5. 투박한 정의

6. 자본의 운동

7. 화폐영화

8. 빼빼로데이 옵션테러사건

9. 옵션거래의 작동원리

10. [올드보이]와 옵션거래 비교

11. 문답법과 변신

12. 감시와 훔쳐보기

13. 경구와 다큐멘타리

14. 경악과 클리프행어

15. 시청자를 판다

강 한 섭 (서울예술대학 교수)

 

 

"그녀의 목소리는 방자해졌어"라고 나는 말했다.

"뭐라 할까 ......"

내가 머뭇거리자 갑자기 그가 말했다

"돈 냄새야.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돈 냄새가 나"

그렇다. 바로 그것이었다. 돈 냄새

이것이야 말로 그녀의 목소리속에서 딸랑거리며 고개를 쳐드는,

그칠 줄 모르는 매력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1. 기묘한 쾌감

[올드보이]는 재미있는 영화다. 아주 흥미진진한 영화다. 아니 그 이상이다. [올드보이]는 지나치게 재미있고, 과도하게 짜릿한 영화다.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흥분 상태에 빠지곤 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열 몇 번째인가 보았고 또다시 애비와 모르고 근친상간하는 미도 역을 연기하는 배우 강혜정과 오라비와 알고 근친상간하는 수아 역을 연기하는 배우 윤진서의 몸을 이리저리 훔쳐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열 몇 번째의 성적 흥분을 느꼈다.

폭력의 쾌감도 성적 쾌감에 못지않았다. 감금방 사장 철웅의 생니가 장도리로 우드득 뽑혀나가고 주인공 오대수의 혀가 가위로 잘라지는 신체 절단의 섬뜩한 폭력 장면도 감은 눈꺼풀 사이로 즐기곤 했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조금씩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올드보이]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화면에 몰입했다. 어떨 때는 영화의 몰아치는 긴장감으로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도대체 [올드보이]가 주는 이 기묘한 쾌락은 무엇인가? 성과 죽음의 이중 쾌락을 설명하는 근사치 언어는 아마 전율일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 전율의 기원과 움직임이 궁금해 졌다. 이제까지 흔히 거론되는 충격적인 소재, 절묘한 시나리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조형하는 탁월한 연출력 등등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올드보이]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새로운'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궁리를 해봐도 그 새로움의 정체를 설명할 이미지와 개념이 떠오르지 않았다. 초고를 쓰고 찢고, 다시 쓰고 내동댕이치고, 몇 번 했다. 러다 출구의 빛을 희미하게 보았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련스럽게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달만 뚫어져라 보았다. [올드보이]'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가르는 비평가의 관념이 아니라 하나의 물질, 하나의 실천, 하나의 운동으로 보았다. 그 물질의 구성 요소, 실천의 시공간, 운동의 원리만 보았다. 이어지는 글은 그 각성의 기록이다.

 

2. [올드보이] 10주년 그리고 전설

2007년 한 일간지가 박찬욱 감독을 문화계를 움직이는 주요 권력의 한명으로 선정하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올해로 마흔 넷. 박찬욱의 영화 인생은 이미 신화다. 흥행과 비평 모두를 거머쥐었고 해외에서의 선전으로 문화적 국가영웅에 올랐다. 영화 학도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감독이다. 대중예술가의 이상적 모델로도 받아들여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감독이라는 수사가 과언이 아니다. 그의 영화인생은 우리 영상문화의 궤적도 보여준다. 영화광 출신 감독 1세대이며 문화와 교양으로 영화를 찍은 첫 세대다. 전통을 혁신한 '386 작가'이면서 리얼리즘에 환상을 끌어들였다. 민노당원이지만 장르영화를 찍고, 피로 칠갑한 영화 안에서 도덕적 딜레마, 죄의식과 구원 같은 엄숙한 주제를 다룬다. '주류 장르와 B급 상상력의 결합'은 오랜 수사다."1)

여기서 앞의 문장을 '올해로 나이 쉰. 박찬욱의 영화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이미 신화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인생,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올드보이]!. 이 영화를 언급하지 않고 현대 한국영화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역사가 [올드보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조금의 과장이 아닐 정도로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으며 국내의 영화상을 석권한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권위 있는 영화제의 초청과 수상이 이어졌다.2) 해방 후 가장 성공한 한국영화로 기록될 수 있는 영화는 20031121일 개봉되었다. 금년으로 개봉 1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흥행 성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큰물 콤플렉스로 기사의 방향을 잡는 영화 저널리즘은 그래서 감독의 차기 작품들이 아무리 성에 차지 않아도 '박찬욱의 귀는 당나귀 귀야!'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박찬욱이니까 괜찮아'가 되었고 미국 개봉 시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당하고 흥행에서 참패한 [스토커]에도 한국의 언론은 미국 비평계의 찬사놀라운 흥행 기대운운하는 용비어천가를 합창해야 했다.

학술적인 비평과 논문에서도 영화는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학계 뿐만 아니라 타 인문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전문 학술지의 연구 논문과 석, 박사 논문을 통해 영화의 서사와 스타일 그리고 주제 의식 등을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분석하였다. 사용한 방법론은 다양하지만 인문학계의 관심은 대부분 영화의 소재와 내용을 중심으로 특히 영화의 갈등을 설정하고 반전의 계기를 주는 근친상간의 관계를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다.3) 많은 인문학 연구자들이 즐겨 사용한 근거는 영화와 오이디푸스 신화간의 유사성을 근거로 한다. 즉 라이오스 가문과 오대수 가문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4)

 

1

오이디푸스 신화 영화 [올드 보이]
신탁과 산에 버려짐 15년의 감금
귀환 석방
스핑크스의 질문 -
아침에는 네발로 걷다가 낮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짐승은 무엇인가?
이우진의 질문 -
15년 감금의 이유를 5일 동안 찾아라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근친상간 이우진과 이수아의 근친상간
오대수와 미도의 근친상간
눈을 찌르다 혀를 자르다
딸 안티고네는 끝까지 아버지를 따른다 딸 미도는 끝까지 아버지를 따른다

 

 

3.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올드보이]를 신화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사실 신화와 별다른 관계가 없다. 신화는 끝없이 광활하고 매순간 변화하는 세상이라는 미지(未知)에 대해 생노병사의 한정적인 운명을 사는 왜소한 인간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즉 신화는 미지에 대한 무지(無知)의 반응 방식이며 그 방식의 주요한 수사법이 상징(symbol)이다. 신화는 현실에서 연결되지 않는 이질적인 사물들을 비약적으로 충돌시킨다. 그래서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비논리 속에서 세상과 삶에 대한 교훈과 성찰의 계기를 만든다.

그러나 [올드보이]는 정교한 시간의 축 위에서서 사건을 배치하는 플롯의 영화다. 즉 이우진은 15년의 감금기간을 정확하게 계산한 다음 석방하고 5일의 시간을 준다. 그리고는 오대수가 감금의 이유를 밝혀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제의 틀을 바꾸어 버린다. 감독은 자신이 정교하게 짜놓은 이 플롯이 뿌듯했는지 DVD 재킷에 장면 구성표로 제시할 정도다.

그러나 한국의 대다수 관객과 평자 그리고 해외의 박찬욱 마니아들이 열광한 '경이로운 영화' [올드보이]는 사실 엉성한 플롯을 이리저리 끼워 맞춘 영화다. 근친상간 관계의 누이가 상상임신하고 자살할 수 있다. 소문을 낸 사람을 추적하고 사설 감방에 15년 동안 가둘 수 있다. 새롭고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적 풍경 속에서 이러한 설정은 관객에게 조금의 주저나 의심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쿨한 설정이 장편 영화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물과 인물들이 충돌하여 발생하는 관계와 사건들, 그리고 사건이 시공간의 좌표에서 생성하고 변화하면서 드러나는 세부의 패턴들이 플롯적으로 일관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인과성인가, 아트 영화의 우발성인가, 그도 아니면 실험영화의 현실과 판타지도 사라진 리듬뿐인 세상인가? 그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세계관이다.


'그 원인에 그 결과'라는 초등학교 도덕교과서 수준의 인과성으로 서사를 끌어가다 갑자기 아귀가 안 맞자 돌연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어'라며 돌변하면 일구이언하는 것이다. 그런 영화는 신뢰할 수 없는 작품이고 개념 없는 영화로 진정성이 부족한 영화다. [올드보이]에서 미도는 아버지가 실종되고 어머니가 자살하자 스웨덴으로 입양된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와 일식집 지중해의 요리사로 근무 중인가? 이우진이 최면술사를 시켜 오대수를 최면 걸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떻게 스웨덴에 있는 미도를 15년 동안 감시하고 그녀의 거주와 직업 선택의 자유까지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을까? 그래, 영화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래도 오대수의 서울 옛집을 찾아간 미도가 동네의 시계포에서 건네받은 편지 봉투의 찢겨진 부분에 적힌 자신의 스웨덴 이름과 주소(아마도 미도 자신이 직접 썼다)를 보고도 어떻게 눈치 못 챌 수 있나?

감독은 이 허술한 플롯의 면죄부로 '후최면'을 만병통치약으로 휘두른다. 영화 저널리스트 임범의 표현을 빌면 "‘다중인격또는 후최면은 만병통치약이어서 어떤 모순된 설정에도 끌어다 쓸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영화와 관객 사이의 공정한 추리게임을 방해한다."5) 그래서 '후최면'2류 영화에서나 쓰는 기법이다. 그러나 '후최면'으로 영화의 주요 플롯을 구성하는 [올드보이]를 우리는 어떻게 심오하며 멋진 서사로 느끼게 되었을까? 사실 영화는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장면을 통해 영화는 그냥 재미있는 코미디일 뿐임을 고백한다. 오대수가 일당백의 결투를 통해 사설 감방을 빠져나오고 오늘도 대충 수습이 안 된다고 한탄하면서 길을 걷는다. 보기는 멋있지만 황당무계하다. 그래서 [올드보이]는 사실성과 논리적 연결에 의존하는 스릴러 미스테리가 아니라 풍자와 비약의 블랙 풍자 코미디에 가깝다.

필자에게 [올드보이]는 근친상간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6)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망이면서 가장 두려운 금기인 근친상간에 대해 영화는 전혀 진지한 접근과 가치 판단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진지한 가치판단'은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감독은 관객을 훔쳐보기 욕망으로 달아오르기 위해 근친상간을 억지로 끌어 들이고 있다. 관객은 결코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근친 성애의 장면을 여러 각도의 클로즈업으로 목격하게 된다. 관객은 이 천박한 감독의 표현에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영화는 시청각의 현란한 표현 요소들을 가지고 관객들의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빼앗아 무장해제 시킨다.

대중 관객의 이러한 스크린 중독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올드보이]를 서사와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주로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가지고 분석한 '유식한' 전문 연구자들의 다음과 같은 비평들은 영화만큼이나 괴상하다. 윤일수는 [올드보이]가 말()에 대한 영화라는 논지를 전개하면서 "말을 할 때 사용되는 혀는 모양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남근을 상징한다....정신분석학에서 혀를 자르는 것은 거세를 상징하는데, 따라서 오대수가 자신의 혀를 자르는 것은 이수아를 상상 임신시킨 '남성'에 대한 포기를 상징한다"7)고 상상의 날개를 편다. 이러한 분석도 과잉인데 연구자는 더 나간다. 즉 오대수에게 절대적인 힘을 부여한 말의 의미를 감독의 언론 인터뷰에서 찾은 다음, 이를 미군 장갑차에 의해 죽은 효순, 미선 양의 죽음이라는 현실 사건과 연관시키며 난폭한 해석을 이어간다. “오대수는... 서울로 전학가기 전날, 이수아와 이야기 할 때 교련복을 입고 있다.... 교련복은 미국이 한국에서 누리는 특권을 상징하는데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오대수의 말은 바로 한국을 지배하는 미국의 거대한 힘이며, 이우진의 콤플렉스는 한국이 극복해야 할 미국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8)이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영화 비평의 범주를 이미 넘어섰다. 그런데 연구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극단으로 나간다. 박찬욱 감독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홍보출연을 할 정도로 소외되고 억압받은 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영화가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이러한 감독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9)

문제는 이러한 과잉 해석이 윤일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부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영화 서사구조의 쾌락원리를 발생시키는 근본구조로 보면서 "[올드보이]'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원죄로 인해 감금되고 처벌되며 급기야 자신의 혀를 잘리고야 마는 운명에 처한 오이디푸스의 현대적 신화를 보여준다"10)고 주장한다. 이 논지를 이어 받아 정봉석은 이우진을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기획된 인류의 진화론적 담론을 탈주하는 비극적 영웅이자, 한편으론 죽은 신을 대리하는 근대의 신화에 맞서는 선지자"로 해석하면서, 오대수의 해피엔딩이 푸코의 담론이론에 비추어 볼 때 "지배담론의 역사 또는 그 질서에 균열을 냄으로써 내재된 모순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한다.11) 또 백선기.손성우는 라깡의 정신분석적 방법과 기호학적 분석방법을 융합한 연구를 통하여 영화 속에 숨겨진 구조를 분석하면서 오대수의 말을 '죄과'와 연관 짓는다. 오대수의 말이 이수아를 죽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우진에게 굴복하여 살기 위해 말할 권리를 포기한다는 맥락에서 자신의 혀를 자른다고 해석한다.

오대수가 억압하는 상징적 아버지라면 이우진은 희생자인 셈이다. 그래서 혀를 자르고 자신의 죄과를 뉘우치는 엔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엔딩이 지배담론의 영속을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란다. 프로이트를 진리의 시조로 삼고 라캉과 푸코를 사부님으로 호명해서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개념을 경전으로 삼아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오독하는 이런 어처구니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12) 과잉해석자들은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현대철학사전의 인덱스를 영화에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관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실천을 설명하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 즉 이러한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관념적 추론의 오류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 정당이다 - 민주노동당 당원인 박찬욱은 그러므로 진보적 영화감독이다. - 진보적 감독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재해석한 [올드보이]는 그러므로 진보적 영화다 - 진보적 영화이므로 진보적인 영화 스타일을 보여줄 것이다'. 관념의 유희는 복잡다기한 세상을 이렇게 매끈하게 둘로 나누고 직선으로 연결하지만 물질로서의 현실은 어떤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지만 '생활 민주주의' 개념까지 나아간 포스트모던 정치학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수구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박찬욱은 인터뷰에서 평화와 인권을 주장하는 진보 명사이면서도 다국적 정유회사의 광고에 출연해 노래까지 부르는 속물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영국의 비평가 토니 레인즈는 '집단적 추동자들을 위한 동정'이라는 제목을 가진 짧은 리뷰를 통해 이 의문의 정체가 철없는 소년들의 일탈행위이라고 결론 내리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 "지금까지 박찬욱의 영화는 미성숙한 소년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미성숙한 소년들은 적당히 동기화된 과도한 폭력과 기괴한 것을 즐긴다. 또한 이들은 박찬욱의 영화가 번지르르한 스타일과 앞뒤가 맞지 않는 플롯 구성을 넘어서는 성숙한 사고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괘념치 않는다."13) 또 뉴욕타임즈의 평론가 마놀라 다지스는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의 즐비한 시체들과 새디스틱한 폭력 묘사로 볼 때 박찬욱의 팬들은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차이에 대해 무지하여 알아채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달가워하지도 않는 일단의 컬트영화 애호가들일 것이다"라고 혹평한다.14)

과연 그것이 다 일까? [올드보이]를 숭배한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모두 미성숙하며 교양 없는 컬트영화 광신도들일까? 나는 [올드보이]가 사회적 신드롬을 넘어 하나의 종교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하나의 사교에 불과했지만 10년의 세월 동안 그것은 거대 자본을 만나면서 웅장하고 기품 있는 신전을 가진 제도권 종교로 성장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위대한 개츠비]의 스코트 피츠제랄드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방자해졌어"라고 나는 말했다.
"뭐라 할까 ......"
내가 머뭇거리자 갑자기 그가 말했다
"돈 냄새야.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돈 냄새가 나"


그렇다. 올드보이는, 박찬욱은 돈 냄새가 난다. 영화가 흐르고 감독이 말할 때마다 돈 냄새가 난다. 진동한다. [올드보이]와 신화가 된 대한민국 문화영웅 박찬욱의 그칠 줄 모르는 매력의 원천에는 돈 냄새가 풍긴다. 필자는 지금부터 그 돈 냄새를 추적하겠다. '관념으로 실천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물질 실천으로부터 출발하여 진보적영화라는 관념을 해석'해 보겠다. 영화 스토리의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영화의 운동으로, 영화적 운동의 작동원리로 [올드보이]를 분석해 보겠다. 그래서 [올드보이]가 어떻게 관객을 숨 쉴 수도 없이 몰아세우고 흥분시키며 마지막 반전에는 감탄사를 지르게 하는지 밝혀보겠다. 돈이 사람을 몰아세우고 흥분시키며 감탄사를 지르게 하는 방법과 똑같이 말이다.

 

4. [올드보이] 창세기, 2002년 봄에서 2003년 봄까지

박찬욱 감독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인 [복수는 나의 것]의 다음 작품으로 흡혈귀 영화와 인혁당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JSA, 공동경비구역]의 감독의 영화라면 충무로 제작 자본들은 어떤 프로젝트에도 판돈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큰 기대 속에 2002329[복수는 나의 것]이 개봉되었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고 감독은 인터넷 공간에서 저주에 가까운 악풀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투자계에서도 'B급 영화 매니아 출신의 한계라며' 쑥덕거렸다. 게다가 19992월의 [쉬리]로 부터 시작된 한국영화 붐의 첫 번째 막도 제작편수 과잉과 무리한 투자로 인해 파열음을 내며 끝나가고 있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상업적으로 재앙을 초래하자 박찬욱 감독의 평판은 스타 감독에서 수상한 예술가로 변신해 버렸다. 그는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고 2002년 가을 신생 제작사가 기획한 일본 만화원작 [올드보이]를 선택한다. 그러나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난항이었다. 원작 만화가 갖고 있는 '스토리의 탄탄함과 스릴러적 구성'은 매력적이지만 '왜 가두었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의 답을 찾기 어려웠다. 만화 원작이 보여주는 지극히 사적인 내면적인 상처로는 대중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만들기 어려웠다. 200211월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야수'라는 제목을 달고 초고가 완성되어 투자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그러자 곧 [복수는 나의 것2]라는 악담이 돌았다. 그 당시로는 평균 제작비를 상회하는 30억원이라는 순제작비 규모도 부담스럽고, 영화의 개봉예정 시기인 200311월 중순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 [매트릭스3][반지의 제왕3]이 예고되어 있었다. 흥행사들의 입장에서는 '야수'는 대중성 있는 상업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스타 배우의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서 메인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박찬욱 감독도 자본주의 한국 영화산업에서 부활하느냐, 아니면 퇴출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시나리오 작업도 초고부터 4고까지 지난한 작업을 이어갔지만 "늘 같은 질문에 대한 반복적인 되풀이'가 되었고 (제작사는) 작가들과 함께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찬욱 감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 제시했고, 그것이 관객들이 보게 된 [올드보이]의 내용이 되었다".15) 감독이 선택한 답이 바로 근친상간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영화는 17개의 군소 투자사들의 소액 투자를 끌어 모아 2003512일 장충동 정우당 시계방 로케이션으로 5개월에 걸친 68회 촬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5. 투박한 정의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인 체제다. 자본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본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자본의, 자본에 의한 그리고 자본을 위한 사회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감 없는 정체다. 이런 정의가 너무 단정적이고 투박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자본주의 세상을 감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의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이 더 섬뜩하다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16)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모든 제도와 현상들이 궁극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고 작동한다. 의회, 재판소, 검찰, 언론기관, 종교기관, 교육기관, 문화적 기구 그리고 가족 제도까지 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증식하고, 영생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념적 국가 기구’다. 무슨 주의(主義)란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이다. 무슨 이즘(ism)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6. 자본의 운동

그러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운동하는가? 국어사전의 정의를 출발점으로 그 운동 원리를 생각해 보면 우선 자본주의의 목표는 생산수단인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의 최대 이윤획득이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상품화하는 물화(物化) 운동을 시작한다. 영리적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생산된 상품들로부터 시작하여 토지와 산천초목도 등급을 정해 나눈다. 그리고 인간도 상품화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직 생산되지도 않은 가상의 물건을 상정해 선물(先物)이라 부르고 그 가격 변동률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하는 행위를 옵션거래라 부른다. 우리가 지금 몇 년 째 겪고 있는 경제 위기는 파생 상품이라 부르는 숫자로만 존재는 허구적 상품 시장이 현물 시장의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17) 이것은 자본주의가 사회적 인간관계를 ‘자본가 → 노동자 → 소비자 → 자본가’로 연결되는 물질적 관계로 즉 화폐의 이동 경로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물화 작업이 완성되면 자본은 상품이 된 사물을 시장에서 가격이라는 매개 변수를 활용하여 거래한다. 그런데 상품이 된 사물은 그 사용가치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라는 교환가치에 의해 값이 정해진다. 즉 인간의 생존에 얼마나 필요한 가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희소성에 따라 정해진다. 그래서 독점 자본의 초과이윤 획득은 사물화와 가격이라는 두 개의 장치로 간단하게 완성된다.

이제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은폐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 마술을 준비한다. 바로 집단으로서의 사회에서 개인을 분리한 다음 그에게 세상을 독립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이자 능력인 마인드(mind)를 부여한다. 이제 인간은 신탁과 율법에 의해 세상을 암기하고 복창하는 피조물(creatures)가 아니라 마인드로 세상을 지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자유로운 맨(Man)으로 격상된다. '자유 시민'이 화폐를 매개체로 하여 '자유 시장'에서 '자유 선택'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구매한다! 바로 자본주의 신화의 완성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형용모순이다. 인간이 독점 자본의 초과 이윤을 위해 활동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 생명권과 참정권을 가지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는 자유로운 사생활을 통해 행복추구의 권리를 가진다. 사물화와 가격 그리고 자유의 환상을 동시에 실현하는 자본의 운동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 시장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자유인이라고 자부하고 오해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 된다. 그것은 마치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주술에 걸린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목표로 파업하는 것과 같이 모순으로 느껴진다. 공장의 주인인 노동자가 공장에 대해 파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본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대신에 상품의 이름을 질문하고 욕망한다. 상품의 로고가 부착된 아파트에 살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상품의 아이콘이 장식된 옷을 자랑삼아 입고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거대 자본이 만든 균질화 된 식사를 제공하는 훼밀리 레스토랑 체인점에서 가족 식사를 한다. 자본주의 신화가 가짜 주인들에 의해 완성된다. 자본주의는 가짜 질문으로 사는 허위의식이 지배하는 사회다.



7. 화폐영화

이 글이 다루는 대중영화 산업이야 말로 자본주의적 형용모순의 극치를 보여준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한국영화의 평균적인 제작비는 쉽게 십억 원을 넘는다. 평균은 그냥 평균이어서 보통 관객이 선택하는 영화들은 평균적인 영화가 아니라 특별한 영화들이다. 그래서 제작비가 일백억 원에 쉽게 이르다. 이건 그냥 순수 제작비다. 한국영화의 광고 마케팅비는 제작비의 1.5배 정도다. 왜 영화 한편 제작비로 수십억 원을 투자하겠는가? 왜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알리기 위해 제작비보다 많은 돈을 쓰겠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많은 관객들에게 인간 존재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위기에 빠진 자연 생태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대중영화를 만드는 것이 절대 아니다.

대중영화들은 대개 영화의 내용도 비슷하고 표현하는 방법도 거기서 거기지만 극장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가지는 창작품으로 전시된다. 그러면 여기에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믿는 소위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적인 관객들이 등장하여 지정된 좌석에 앉는다. 상영 시간이 되어 불이 꺼지면 관객들은 스크린의 풍경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찰자가 가지는 독점적인 시각의 주체로 대우 받게 된다. 여기에 감정이입, 동일화 그리고 미학적 카타르시스의 심리적 공감을 위한 제조 과정이 동원된다. 약 두 시간의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감정의 여정이 끝나면 장내에 불이 켜진다. 관객들은 서둘러 좌석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선다. 관객은 그저 여가시간을 활용하여 오락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감상한 영화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높을수록 관객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자유로운 주체'라는 판타지는 더 힘이 세어져 있다.

'허위의식', '계급 갈등', '부르주와 영웅' 그리고 '헤게모니'와 같은 개념들은 이제 굳이 마르크시스트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의 대중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들이 되었다. 그래서 대중영화가 궁극적으로 자본의 증식을 위해 대중의 판타지를 활용하는 이데올로기적 생산품이라는 점도 더 이상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이제 대중영화의 영역으로 부터 '화폐영화'라는 새로운 현상을 분리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화폐영화18)는 대중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증식을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다. 대중 영화는 제작에 참여하는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모두 화폐의 양으로 계산하여 이를 총 투자액으로, 극장 상영으로부터 시작하여 공중파 TV에 이르는 부수시장의 수입을 매출액으로 상정한 다음, 이 둘의 비율 즉 자본 수익률의 수치가 제작의 가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영화다.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대부분의 대중영화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화폐영화 개념을 제안하고 사용하는 까닭은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의 무의식을 좌우할 정도로 정교해지면서 자본의 증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영화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들의 서사와 이미지 운동은 자본의 작동 원리와 운동법칙을 모방한다. 자본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자본의 작동원리를 그대로 모방하는 영화, 자본이 주는 억압과 공포를 스스로 자본이 됨으로써 해결하는 영화, 즉 자본을 내면화하여 아예 영화=자본이 된 영화를 설명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다.



8. 빼빼로데이 옵션테러사건

[올드보이]를 전통적인 비평과 분석의 방법론으로 읽으면 안된다. 화폐영화의 작동 원리와 표상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자본주의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2010년 11월 11일 대한민국에서 금융자본주의가 그 민낯을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그 날의 사건을 ‘빼빼로데이 옵션테러사건’으로 부른다. 자, 이제 자본주의 국가가 화폐의 유동성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허가한 옵션거래라는 투기적인 머니 게임의 범죄 드라마를 세밀하게 살펴보자.19)

매해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다. 그날 젊은 여자애들은 숫자 '1'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과자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의미에서 친구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다. 3 년 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는 조금 특별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국 신봉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정치 이벤트 G20 서울회의의 개막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날을 '빼빼로데이 옵션테러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11월 옵션 만기일이었던 그날 주식시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코스피 지수 2000 포인트 돌파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마감 30분 전부터 ‘외국인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하락으로 비추어졌고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은 마감 지수가 2000에 얼마나 다가갈지에 모아졌다. 하지만 장 마감을 10분 앞둔 2시 50분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코스피 지수는 5포인트 하락을 시작으로 매도 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오후 3시 장 마감 지수는 53.12포인트 하락, 2.7% 대폭락했다. 그날 외국인들이 2조3천억원의 주식을 대량매도하면서 코스피지수가 폭락하면서 옵션에 투자한 개인과 자산운용사들이 1400억원 이상 손실을 봤다. 이날 만기에 행사가가 시장 가격 보다 높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코스피200 행사가 252.5포인트 풋옵션은 1000원에서 50만원으로 상승. 최대 500배의 대박을 낳았지만 반대로 기초 자산 가격이 행사가보다 낮을 때 수익이 나는 행사가 247.5포인트 콜옵션 가격은 63만원에서 1000원으로 99.8% 급락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검찰의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도이치뱅크 홍콩지점과 뉴욕 도이치 증권 그리고 한국 도이치증권이 사전에 치밀하게 모의하고 실행한 범죄로 드러났다. 즉 범행 계획은 도이치뱅크 홍콩지점 지수차익거래팀이 주도했고, 이를 뉴욕 도이치증권에 보고해 승인을 받았다. 범인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11월 옵션만기일을 D-데이로 정하고 보유한 주식을 대량 매도하기로 했다. 대신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옵션거래 계획을 사전에 세웠다. 그리고 사건 5개월 전부터 차익거래를 통해 현물과 풋옵션을 대량으로 매수해 왔다.

매도 주문 창구역할은 한국 도이치증권이 담당했다. 한국 도이치증권은 삼성전자 등 코스피200 구성종목 199개 주식 전량을 옵션만기일 장 마감 동시호가에 직전가 대비 4.5-10% 낮은 가격으로 총 7회에 걸쳐 매도했다. 이는 총 거래 대금의 25%에 달하는 매물 폭탄이었다. 사전에 주가가 폭락하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콜 옵션 매도, 풋 옵션 매수 조합을 동시에 취한 도이치증권 홍콩지점 지수차익거래팀은 448억7천873만원의 부당 이익을 취했다. 한국 도이치증권 파생상품 담당 상무는 사전에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홍콩지점과 별도로, 한국 도이치증권 법인의 고유 계정을 통해 풋옵션을 매수해 이익을 또 챙겼다. 이 범죄에 동원된 자금은 도이치뱅크가 자기 자금 운용을 위해 런던지점에 만들어 놓은 계좌에서 나왔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이 같은 혐의로 도이치뱅크 홍콩지점 임원 D씨 등 외국인 3명과 한국도이치증권 상무 박모씨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20) 



9. 옵션거래의 작동원리

빼빼로데이 옵션테러사건 케이스를 통해서 금융자본주의 최고의 상품인 옵션거래라는 파생상품을 소개했다. 그러나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옵션이라는 말은 자동차나 아파트를 구입할 때 들어봤지만, 콜옵션과 풋옵션이라는 생소한 개념에서 현기증을 느낀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글을 포기하면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고 금융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상품이 옵션거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옵션거래를 모르면 금융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없어 그 기회와 위험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은 2008년 늦가을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로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래서 지금은 ‘포스트 금융자본주의’(Post-Finance Capitalism) 시대다. 바로 금융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체제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시대다.

그래서 필자의 모든 지혜를 동원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보겠다. 쉽게, 간결하게 말하자면 옵션거래란 ‘현물시장의 가격 변동 리스크만을 떼어내 거래’하는 것으로 원래는 현물시장의 위험을 보완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친근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떡집 주인은 추석을 앞두고 쌀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여 쌀 도매업자에게 미래시점에 10가마를 kg당 3,000원에 공급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쌀 도매업자 역시 쌀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여 좀 더 있어보자고 했고요. 떡집주인은 kg당 500원씩 더 얹어주고 이 금액 50만원을 먼저 지불하고 계약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추석이 되었고 예상대로 쌀값은 폭등하여 kg당 4,000원에 거래가 되었으며 떡집주인은 계약대로 쌀 공급을 요구했습니다. 쌀 도매업자는 계약대로 kg당 3,500원에 쌀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쌀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콜옵션, 쌀을 팔 수 있는 권리를 풋옵션이라고 합니다.”21)

떡집 주인과 쌀 도매업자 사이의 거래에서 떡집 주인은 미래 시점에 쌀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을 구매함으로써 폭등한 쌀 시세 보다 kg당 500원 싸게 구입하는 이익을 보았다. 또 쌀 도매업자도 계약 당시의 쌀 시세 보다 kg당 500원 비싸게 판매하는 이익을 보았다. 옵션거래를 통해 쌀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두 이익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옵션거래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위험을 현재에 대비하는 인간의 본능과 지혜로 시작된 것이다. ‘위험’을 감지하면 ‘싸우거나 도망가는 것’(fight or flight) 중에 하나를 즉시 선택하는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나 유명한 한자 숙어 하로동선(夏爐冬扇, 여름에 화로를 준비하고 겨울에 부채를 준비한다)의 지혜처럼 말이다.

그러나 떡집 주인과 쌀 도매업자에게 모두에게 이익이 된 거래를 모방하여 한 머리 좋은 사람이 쌀의 가격 변동지수를 쌀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팔고 사는 시장과 상품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축복일까, 혹은 재앙일까? 판단은 조금 뒤로 미루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이 옵션거래로 대표되는 선물상품이며(선물상품을 현물에 기초해서 분화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파생상품 derivative'라고도 부른다)22), 그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을 선물시장이라 부르며, 이 선물시장23)의 국경을 초월한 전 지구적인 역동적 거래를 통해 운영되는 시스템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금융자본주의다.24)

그래서 옵션거래란 ‘미래의 특정한 날짜에(만기일) 특정한 자산을(기초자산) 일정한 가격으로(행사가격) 일정한 수량만큼(계약수) 매입하거나(콜옵션) 매도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사고, 파는 상품’을 말한다. 선물시장의 사회적 순기능은 ‘상품이 생산될 때와 최종적으로 이용하게 될 때까지의 사이에 있어서 가격변동이 있게 될 위험에 대한 보험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25) 세계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인 한반도에 외국인들이 연간 수십조원의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것도 코스피200 선물·옵션 때문이다. 선물시장을 이용한 연계거래를 통해 위험을 헤징할 수 있고, 언제든지 달러로 바꿔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이 곧 붕괴할 것 같고 그리스 위기로 유럽공동체와 유로화가 해체될 것 같지만 파국을 피하거나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선물 파생시장 덕분이다.


그러나 옵션거래의 장점은 여기까지다. 보험의 수단이라는 순기능에 비해 역기능은 시한폭탄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크고 치명적이다. 그 단적인 예가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장외파생상품에 발을 담그다 차례로 무너져 전 지구의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뻔 했던 2008년 금융위기다. 신자유주의 경향의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파생상품시장을 제도와 법에 의해 통제할 수 있다며 금융시장의 발전에 파생상품의 거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생상품은 기본적으로 지금-여기는 물론이고 미래-그곳에도 실물(實物, real thing)이 아니라 숫자로만 존재하는 가상물(假想物, virtual thing)이다. 그러나 인간은 실물로 존재하는 사실성(reality)보다 머릿속의 기대와 추측으로 만들어지는 상상(fantasy)에 의존하는 별난 고등 동물이다.26) 또 장내파생상품과 장외파생상품의 구분은 교과서에서만 가능하지 실제 파생상품 거래에서는 극히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현물 상품은 지금-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에 실체와 개수를 확정지을 수 있지만 파생상품은 미래의 가격에 대한 기대의 차이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즉 머릿속의 상상이 만들기 때문에 형태도 모호하고 개수는 무한대이기 때문이다.27)

투기적인 파생상품 시장의 위험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 이제 파생상품 중에서도 투기적인 성격이 가장 강한 옵션거래와 '금융강국'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던 새천년의 흥분기에 탄생한 [올드보이]의 작동 원리의 유사성을 증명하려는 글의 의도가 드러났다. 그러면 비교를 위해 옵션거래를 플롯을 가진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해 보자.

1) 주식시장은 사적 기업이 발행한 출자 증권인 주식을 매매하는 시장으로 상품의 거래는 크게 현물거래와 선물거래로 구분된다. 현물이란 매매계약 성립 시에 이미 존재하는 상품을 가리키며 선물은 실재하지 않으나 앞으로 실재할 수 있는 상품을 가리킨다.

2) 옵션거래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선물거래의 일종이다. 그러나 선물거래가 지수의 오르고 내리는 변동성의 방향에 대한 베팅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옵션거래는 지수의 변동률에 대한 베팅으로 이루어지는 머니 게임이다.

3)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옵션거래는 코스피200 지수에 대한 권리로서 옵션 만기일에 마감 지수를 일정한 지수 포인트로 정하여진 행사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콜(call)옵션과 매도할 수 있는 풋(put)옵션이 있다.

4) 지수 변동에 따라 만기일에 행사가격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마감 지수와 옵션 행사가격 차이가 자동적으로 1 포인트 당 10만원씩 청산된다.

5) 주식과 선물은 상한가와 하한가가 있어 하루 변동 폭이 한계가 있으나 옵션은 상한가와 하한가가 없다. 즉 지수가 변동하는 1포인트 당 옵션 가격 변동비율이 정하여 진 것이 아니므로 옵션 상품은 꽝이 되거나 대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옵션거래는 '국가가 공인한 복권'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6) 매월 돌아오는 만기월별로 종목이 달라지고 콜l과 풋에 따라 크게 종류가 둘로 갈라지고 다시 행사가격별로 종목이 달라진다. 행사가격이 되는 지수 포인트는 2.5포인트 단위로 정하여져 있다.

7) 옵션 만기일은 매달 두 번째 목요일이다. 만기일 마감 동시호가(오후 2시50분-3시)에 선물, 옵션과 연계된 프로그램 매매를 실시할 경우 오후 2시 45분까지 사전 신고한다.

8) 만기일에 행사가격 조건이 충족되면 옵션 만기일의 마감 지수와 행사가격이 되는 지수와의 차이에 해당되는 포인트에 10만원을 곱한 금액이 자동으로 결제된다.

9) 옵션은 매도한 사람과 매수한 사람이 지수를 가지고 게임을 하여 한 쪽이 얻는 수익을 다른 쪽에서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옵션 시장 전체로는 수익과 손실이 일치하여 남는 것이 없는 제로 섬 게임이다.

10) 9.11 사태가 발생한 다음날 한국 풋옵션은 전 날에 비하여 최대 504배까지 급등했다. put옵션을 산 사람은 504배까지 수익을 올렸지만 콜옵션을 매수한 사람은 그만큼 손실을 입었다. 전날 100만원을 투자한 사람이 단 하루 만에 5억원을 번 것이다.

11) 한국은 최근까지 국내 지수 옵션 시장의 규모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옵션거래 스토리를 움직이는 작동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서바이벌 투기 게임 : 옵션거래는 상한가와 하한가가 없고, 지수가 변동하는 1포인트당 옵션가격 변동 비율이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꽝이 대거나 초대박이 될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M -> X -> M' (= M+@)
즉 자본 M은 @라는 이윤의 획득을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문제는 항상 이윤 @를 창출하는 X는 무엇인가다. 일반적으로 자본이 투자의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X는 새로운 물건을 생산하거나 (생산품 혁신),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생산과정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 창출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투기를 위해 사용된다면 이때 X는 새로운 부가가치가 아니라 상품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의 약탈적 거래다. 그래서 X는 허구다.
2) 위험 전가의 무한 연쇄 : 투기적 거래는 새로운 부가 가치 창출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죽고 사는 거래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증가할수록 X라는 허구적 가치도 증대하게 된다.

소위 하이 리스크 - 하이 리턴의 관계다. 투자가 가치에 대한 판단의 차이로 성립된다면 투기는 가치가 허구이기 때문에 사고, 파는 타이밍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그래서 투기적 거래는 데드라인으로서의 시간을 정해 놓고 상대방의 패를 염탐하거나 추측하는 공간 탐색으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죽음의 머니 게임이다.
3) 상호감시의 문답법 : 옵션 매매 시점부터 만기 달 두 번째 목요일 오후 2시 50분 - 3시에 펼쳐지는 마감 동시호가까지의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상호 감시 즉 묻고 대답하는 문답법의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다.

이제 옵션거래 상품을 시간-공간-인간의 삼간(三間)과 사건의 개념으로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 옵션 매도자와 옵션 매수자 간에
(공간) 코스피200 지수로 표상되는 자본주의 한국경제 속에서
(시간) 옵션거래 매매의 시점부터 만기 달 두 번째 목요일의 동시호가 까지 벌어지는
(플롯) 지수의 변동률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 대박과 쪽박의 서바이벌 게임

 

10. [올드보이]와 옵션거래 비교

자, 그러면 [올드보이]의 작동원리는 무엇일까? 관객의 오감을 붙잡아 매는 장치, 바로 상영시간 2시간 동안 반복되어 사용되는 운영체계의 원리는 무엇일까? 그 원리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감독의 관념이 아니라 영화의 물질적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드보이]를 신화가 아니라 하나의 게임으로 읽어야 한다. 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임으로만 읽어야 한다. 영화가 게임의 법칙으로 성립되고 게임의 작동원리로 진행된다는 점은 영화에서 이우진의 대사로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안돼요, 스스로 알아내야죠. 아, 게임인데. 먼저 누구냐, 그리고 그 다음에 왜냐?

문제 풀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채점해 줄테니까. 마감은 7월 5일. 어유, 닷새 남

았네. 짧아요? 힘내세요. 성공하면 미도 말고 내가 죽어줄테니까. 으음 미도. 당신

이 죽을 때까지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여자를 죽일거거든요"

이우진이 제안한 게임의 내용을 영화는 포스터와 인터넷 홈페이지 그리고 dvd 표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홍보 수단을 통해 다음과 같은 광고 카피로 요약 한다. '15년의 감금, 5일의 추적', '내가 누군지, 왜 가뒀는지 밝혀내면 내가 죽어줄께요...' 이우진의 제안한 게임은 게임의 승자가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팔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옵션거래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는 옵션의 매도자가 절대 우위에 있고 매수자가 불리한 불공정 게임이다. 그러나 오대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15년의 감금을 통해 그는 '복수심이 하나의 성격이 되어버린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거나 사는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된다. 옵션게임의 판매자는 이우진, 구매자는 오대수다. 시간은 5일 (그래서 7월 5일이라는 데드라인이 자동적으로 설정된다) 동안 15년의 감금을 (이것을 알기위해서는 감금 이전의 자신의 인생을 기억하고 복기하여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화의 공간은 오대수의 인생이다)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매도자가 제시한 문제는 '먼저 누구냐, 그리고 그 다음에 왜냐?'였지만 매수자는 '누구냐... 너는? 날... 왜 가둔거냐?'로 오해한다. 그래서 이 게임은 처음부터 매도자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자본은 앞에서 설명한대로 M -> X -> X'(=M+@)의 등식이 성립될 때만 작동한다. 즉 새로운 가치 X의 존재가 예측될 때만 작동한다. [올드보이]에서 X는 당연히 '15년의 감금'이며 ‘누가’와 ‘왜’의 두 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질문이 허구다. 이우진은 ‘복수가 아니라 분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단지 간접적으로 매개할 뿐, 사태의 본질을 창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어에 대한 드라마도 아니다. 그렇다고 근친상간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 감독이 관객을 훔쳐보기 욕망으로 달아오르기 위해 근친상간을 억지로 끌어 들인 것이다. 근친상간은 ’일종의 알레고리로 차용‘되고 있을 뿐이다.28)

그러면 [올드보이]는 무엇에 승부를 거는 영화인가? 투기 게임에서는 X의 존재 없이도 자본은 작동한다. 자본이 가치에 대한 기대 차이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타이밍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박과 쪽박이 갈리기 때문이다. [올드보이]도 오직 단 하나의 의문을 던지고 2시간동안 관객과 타이밍 게임을 하는 영화다. 그래서 타이밍에 모든 것을 거는 제로섬 서바이벌 투기 게임이다.

[올드보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 즉 새로운 미학적인 부가가치 창출에는 진지한 성찰이 없는 100% 관객 경악 목적의 텍스트다. 그래서 아무런 메시지도 없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상호 감시 즉 묻고 대답하는 문답법을 서사 진행의 엔진으로 채택하게 된다. 그래서 서사가 진행할수록 서사의 리스크가 증가하고 X라는 허구적 가치도 증대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타이밍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래서 오대수가 혀를 자르고, 이우진은 권총 자살한다. 그리고 오대수는 이국의 땅에 다시 우인(偶人)으로 던져져 딸 미도와 재회한다. 이러한 결말은 실로 자가당착이다. 황진미의 명쾌한 증명처럼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우진의 파시스트적 행동을 그대로 수용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이제 옵션거래와 마찬가지로 [올드보이]를 시간-공간-인간의 삼간(三間)과 사건의 개념으로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 옵션 매도자 이우진과 옵션 매수자 오대수 간에
(공간) 오대수의 인생사 속에서
(시간) 옵션거래 매매의 시점인 6월 30일 부터 만기인 7월 5일 동시호가 시까지 벌어지는
(플롯) 스토리의 갈등 지수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 사느냐 또는 죽느냐의 서바이벌 게임

이를 기초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화로 설계된 [올드보이]와 머니게임으로서의 '옵션거래'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표2

올드 보이   옵션거래
사느냐, 죽느냐의 복수게임
- 서바이벌 게임
게임 지수 변동률에 대한 베팅으로 이루어지는 머니 게임
-서바이벌 게임
옵션 매도자 이우진 (알고 근친상간)
옵션 매수자 오대수 (모르고 근친상간)
주인공 옵션 매도자 (일확천금)
옵션 매수자 (일확천금)
15년 감금의 이유를 5
동안 찾는다 - 데드 라인
시간 매월 두 번째 목요일, 오후250분부터 3시까지
- 데드 라인
인간 오대수의 인생
-과거부터 현재까지 복기
공간 코스피200 지수로 상징되는 한국자본주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복기
문답법과 클리프행어 게임의 방식 매도와 매수
대박과 쪽박
복수는 나()의 것 게임의 주제 대박과 쪽박은
하늘()만이 안다

 

11. 문답법과 변신 (Dialectics & Metamorphoses)

박찬욱 감독은 ‘주류 장르와 B급 상상력의 결합’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된다. 그중 금기의 이야기를 새로운 영상 스타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올드보이]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올드보이]의 상영시간은 고전영화의 표준인 2시간에서 고작 20여초 빠진다.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투르기의 최고 전범인 3막 선형 구조 (3 acts linear structure)를 위반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3막 구조의 뼈대인 '5개 구성점' (5 plot points) 규칙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준수한다. 근친상간을 주요 갈등으로 삼아 스토리를 추진하고 확대 전개하여 클라이맥스의 반전으로도 삼는 문화적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 그러나 서사의 뼈대와 근육 그리고 관절의 작동은 아주 고전적인 관습적 원리를 준봉하는 영화, 이 두 얼굴을 가진 이상한 영화 [올드보이]의 표상 시스템은 무엇인가?

영화의 표상 시스템은 크게 서사 시스템과 이미지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대안적 플롯을 지향하는 예술영화들은 서사와 이미지 시스템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예술영화의 작가들은 인과율에 의해 연결되는 연속적이고 순차적이어서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서사의 존재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장르영화와 같은 고전적 스타일을 가진 영화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서사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스타일의 영화에서 모든 표상 요소들은 서사 시스템에 종속된다. 원근법에 기초한 촬영, 시공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편집 그리고 스타 이미지에 기초한 연기술까지 오직 서사 시스템을 위해 존재한다. 고전영화에서 서사는 왕이고 다른 표상 요소들은 노예다. 그러면 서사의 표면은 실험적이지만 그 구조와 작동원리는 지극히 고전적인 [올드보이]의 표상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되었을까? 감독은 의표를 찌르듯 영화의 첫 장면에 시스템의 원형을 날것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0. 아파트 옥상 (낮)
멀리 아파트 단지 주차장을 배경으로, 웬 남자의 겁에 질린 얼굴. 머리칼이 바람이 날린다. 품에 안겨 턱을 핥는 애완견. 넥타이를 움켜쥔 대수의 손이, 남자가 추락하지 않도록 간신히 지탱하는 형국이다.

 

남자

뭐요?

 

대수

(책 읽듯이 억양 없이)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

(울상이 되어)

아, 모야....말투두 좆 같구....당신 도대체 누구야, 씨발!

 
대수

내 이름은....

 
2.1. 파출소 (저녁)

고개 드는 대수, 여기저기 멍들고 터진 얼굴이다.

 

대수

....오, 대, 수요....

 

벽에는 노태우 초상.

“당신 도대체 누구야, 씨발!' - '내 이름은 ... 오. 대. 수요' 영화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영화를 여는 첫 장면이면서 감독이 정교하게 디자인한 문답법과 변신으로 이루어진 표상 시스템의 서사와 이미지 원형이 최대의 임팩트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답법은 서사 장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사법의 하나로서 작가가 제3자의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고 두 사람 이상의 화자를 등장시켜 묻고 대답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문답법을 산파가 아이를 낳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듯, 자신도 산파처럼 거듭된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산파술로 명명했다. 또 인식이나 사물이 정(正)과 반(反) 그리고 합(合)의 3단계를 거쳐 전개된다는 변증법(dialectic)의 어원도 대화술과 문답법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엄청 유식한 전문어로 보이는 변증법 ‘다이어렉틱’이 대화를 뜻하는 ‘다이아로그’의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29)

그러나 박찬욱은 문답법을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 서사의 허구성을 감추고 관객이 이에 대해 질문하지 못하기 위해, 즉 관객을 영화의 주인공과 정서적 일체감을 가지는 감정이입(empathy)을 통해 이야기 도취 (narrative transport)의 심리적 중독 증상에 빠트리기 위해 사용한다. 인지 심리학에 따르면 이야기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소프트웨어 중의 하나다. 즉 이야기가 집단에서 정보 획득과 대인관계에 필요한 도구였기 때문에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성향이 존속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야기란 바로 플롯이다. 플롯은 배치다. '다음에 어떻게 될까'가 이야기의 작동원리다. 즉 이야기는 다음(next)을 예측하고 예측의 오류를 교정한 다음 예측의 확률을 높이는 일련의 보상-예측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다. 신경과학자 리드 몬태규에 따르면 이야기 도취는 보상체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중독성이 강한 이야기를 들으면 소량의 코카인을 복용할 때와 다름없는 효과가 나타난다. [올드보이]에서 대화법은 관객에게 플롯의 허구성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효과로 사용된다. 관객과 함께 비밀의 X를 찾는 게임이 아니라 원래 허구인 X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오직 쏟아지는 이미지와 대사의 자극을 흡수하는 기계로 존재하게 만든다.

[올드보이]는 상영시간 2시간 동안 내내 감독과 관객이 '넌, 누구냐?'를 즉 '오대수는 누구냐?'를 두고 게임을 벌이는 영화다. 그런데 여기서 정답은 없다.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을 위한 게임 즉 질문과 답의 타이밍에 의해 사느냐, 죽느냐가 갈리는 생과 사의 게임이며 대박과 쪽박으로 나뉘는 게임이다. 영화에서 오대수는 먼저 샐러리맨 오대수, 15년형을 사는 죄수, 자유의지 없이 세상에 던져진 우인(偶人), 복수가 삶이 된 괴물, 주도면밀한 추적자, 로맨틱한 연인, 성전환자, 이수아의 무릎에 집착하는 소년 페티쉬스트, 근친상간자, 혀 잘린 오이디푸스 그리고 근친상간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근친상간에 빠지는 비극적 인간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한다. 펜트하우스의 22분에 걸친 처참한 청산의 장면 마지막에 오대수의 독백이 흐른다. "여기까지가 제가 겪은 모험의 전부입니다"



12. 감시와 훔쳐보기 (Surveillance & Voyeurism)

'당신 도대체 누구야, 씨발!' - '내 이름은 ... 오. 대. 수요'.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표상 시스템의 핵심인 서사 시스템의 원형을 타이틀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제시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헤이! 중요한 것은 근친상간도 말도 복수도 아니야, 오대수가 누구냐는 것이야!’라고 결정적인 힌트를 준 것이다.

그리고 바로 ‘내 이름은 ... 오. 대. 수요’하는 그 순간부터 서사 시스템의 주(主)엔진으로 선택된 문답법의 실행 파일이 작동한다. 바로 감시의 서사 시스템이다. 1988년의 어느 비오는 밤에 끌려온 파출소는 물론이고 그가 다니는 회사 건물, 퇴근 후의 첫 번째 술집 그리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혼란한 취중몽생의 삶의 궤적 내내 오대수는 감시받고 있었다. 그리고 납치 장소인 파출소 인근의 공중전화 박스, 그리고 그 박스의 주변에서 감시의 눈은 물리력으로 변해 오대수를 납치하고 사설 감방에 가둔다. 그라고 오대수는 2003년까지의 15년 동안 폐쇄회로 모니터로 감시당한다.

2003년 오대수는 어느 아파트 옥상에 내던져 진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세상에 내 던져진 인간 ‘우인’(偶人)이 된 것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 던져진 인형 인간이기 때문에 오대수는 몸은 물론 마음까지 감시당한다. 물리적 실체로서의 몸은 미도의 집 건너편의 ‘수대오의 집’의 망원경과 카메라로 감시당하며 가상공간에 부유하는 이미지로서의 몸은 천리안 통신서비스로 감시당한다. 그리고 오대수의 마음은 석방되기 전에 후최면되어 자유의지 없이 설정된 자극에 대해 응당 반응하는 기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의 무의식은 철저하게 프로그램화 되어 감시당하고 있다. 감시의 서사 시스템은 이렇게 실재와 가상공간, 의식과 무의식을 가리지 않고 또 모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총동원하여 펼쳐진다.

감시의 서사 시스템을 박찬욱은 ‘훔쳐보기’(Voyeurism)의 이미지 시스템으로 보여준다. 원래 영화의 서사가 고등학생 오대수가 이수아-이우진 남매의 근친상간 행위를 훔쳐보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복수로 이우진은 오대수를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 구금하고 모니터로 훔쳐본다. 그리고 석방한 후 미리 오대수의 마음과 몸을 프로그램화하여 철저하게 그를 훔쳐 본다. 3막 선형구조의 중간점(mid-point, ‘돌아갈 수 없는 지점’으로도 불린다)에 러브호텔에서의 오대수와 오미도의 근친상간도 사전에 프로그램화되어 실행된 것이다. 객실의 벽지도 흔한 벽지가 아니다. 올드보이 전매특허인 기하학적 문양을 가진 보라색 벽지다.

그러나 [올드보이]의 훔쳐보기는 다시 한 번 서사와는 관련이 없다. 오직 관객에게 서사의 그럴듯하지 않음을 눈치 채지 못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즉 영화관객의 퇴행적인 무의식인 훔쳐보기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화다. 관객은 엄청나게 크고 움직이며 소란스러운 스크린을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로 바라보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흡수 기계다. 이 기계가 자유인으로 오해하는 심리가 영화와 관객의 기본적인 심리 시스템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진지한 영화는 이러한 왜곡되고 퇴행적인 심리 메커니즘에 대한 성찰이고 비판이며 도전이다. 그러나 박찬욱은 그러지 않는다. 관음증을 성찰하지 못하고 뻔뻔스럽게 관음증을 확대 재생산한다. 그래서 [올드보이]는 “감독이 관객을 장악하고, 관객은 기꺼이 자기를 잊고 투항하는데서 모든 영화적 쾌감이 발생하는 영화”30)가 되었다. 감독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드보이]의 감독은 박찬욱이 아니라 투기 자본이다.



13. 경구와 다큐멘터리 (Aphorism & Documentary)

'웃어라, 온세상이 너와 함께 웃게 될 것이다. 울어라, 너만 울게 될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첫 번째 아포리즘, 경구(警句)다. 경구는 '사람의 의표를 찌르면서도 인간세계의 진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풍자와 함축성이 풍부한 짧은 글'이다. 그러나 [올드보이]의 경구가 등장하는 상황은 인간과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경구의 사전적 정의와는 아주 멀어 보인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이다. 오대수가 석방된 후 옥상에서 만난 투신자살하려는 강아지를 안은 남자와 서로의 상황을 질문하고 답한다. 그 다음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오대수, 같이 탄 부인이 질겁한다. 다음 장면은 오대수가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그때 부인은 경비원에게 오대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발하지만 그는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이때 사나이가 옥상에서 떨어져 자동차에 충돌한다. 이때 오대수의 독백으로 경구가 나온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게 될 것이다. 울어라, 너만 울게 될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세상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앞으로 펼쳐질 복수극을 예고하는 것인가? 등등. 그러나 오대수는 부인에게 빼앗은 선그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전혀 경구 따위를 할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구들을 주인공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자살남은 “제가요,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두요. 살 권리는 있는거 아닌가요”라고 외치지만 결국 투신자살하고 사설 감방의 운영자는 “있잖아..사람은 말이야..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 거래..그러니까..상상을 하지 말아봐..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라며 술 취한 철학자 같은 소리를 한다.

이러한 경구에 의한 서사 전술은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대사법에서는 옛 말투나 어휘를 사용해 품격을 높이는 수사법인 의고체(擬古體)로 발전 변형된다. 오대수는 감방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몸 상태를 분석한다 “원래 빛을 못받으면 (흐흠...)비타민A.E가 부족해진다.(흐~음)그래서 인프루엔자 바이러스의 면역이 없는거다.” 석방되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를 보고 “여자 사람이다”이라며 황홀해 하고 거리의 불량배들과 일전을 벌이고는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 더 넓은 감옥에서의 삶은... 15년간의 상상훈련. 쓸모 있을까 ? ...없다”고 중얼거린다. 이우진의 대사도 경구와 의고체로 이어진다. 일식집 지중해로 전화를 걸어 오대수에게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는거야. 학교 끝났으니까 이제 숙제를 할 차례잖아?라며 멋을 부리던 그는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가라앉는 건 똑 같아요”,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답이 않나오는 거야...” “당신이 그 날 일을 기억 못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말이야... 그냥 잊어버린거야. 왜? 싱거운가요? 하지만 사실이야. 당신은 그냥, 잊어 버렸어. 왜? 남의 일이니까”. 등등 경구를 늘어놓더니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난... 무슨 재미로 살죠?”라고 폼 잡으며 머리에 총을 쏜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올드보이]의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난센스적인 경구 전술은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포탈의 영화 페이지에서 영화의 제목을 기입한 후 ‘명대사’를 클릭하면 된다. 네이버에는 총 743명의 네티즌이 참여해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명심해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에요..’와 같은 소위 ‘명대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관객들은 비논리적이고 황당무계한 영화의 경구 서사를 인간세계의 모순을 우회적으로 풍자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받아들였다.

경구의 서사 전술이 추상적인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허구적 서사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 위에서 실재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사적 서사 진행을 도와주는 미시 전술이기 때문이다. 경구와 의고체에 의한 서사 시스템은 이제 다큐멘터리 이미지 시스템과 결합하여 영화에 사실성의 외투를 입힌다. 첫 번째 경구가 나오는 장면 전에 즉 오대수의 15년간의 감금기간을 감독은 대담하게 1988년부터 2003년까지의 한국최근세사를 아주 긴 뉴스 필름으로 펼쳐진다. 시민항쟁, 서울올림픽,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IMF 경제 위기, 김대중 정부의 출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 등등. 그럴듯하지 않은 오대수의 드라마는 단번에 역사적인 사건과 겹쳐진다. 그리고 비유법의 자장(磁場)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결론은 이런 것이다. 관객, 당신들이 지금 보는 스토리는 허구가 아니라 실재다. 사소한 일상이 아니라 역사다. 의문을 품지마라. 뉴스 필름이 끝나고 2003년 오대수가 후최면되어 석방되고 미도와 만나 서로에게 성적으로 매혹되면 런닝 타임 30분 언저리이다. 서사 구조로는 플롯 구성점1(plot point 1) 이다. 그리고 곧 제2막이 펼쳐진다. 서사의 갈등을 발전시키는 국면이다. 그리고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시공간을 정해준다. ‘앞으로 5일 동안 15년 감금의 비밀을 찾아라. 찾으면 내가 죽을 것이고 못 찾으면 당신이 죽는다’ 그런데 주어진 5일이 추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2003년 6월 30일부터 7월 5일까지다. 그래서 이제 관객들은 옵션거래의 투자자들이 코스피200 지수의 변동을 한국 경제의 부침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수로 상상하는 것처럼, 그럴듯하지 않는 픽션의 과장된 캐릭터 오대수를 그럴듯한 논픽션의 역사적 인물 오대수로 상상하게 된다. 어두운 극장 공간에서 유일하게 밝게 빛나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오대수는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한국의 가장 전형적인 남자로 상징화된다. 그리고 관객은 오대수의 사춘기 고등학생 시절부터 기억을 지워버리는 몬스터까지의 변신에 모든 판돈을 걸고 올인해야 한다.



14. 경악(驚愕)과 클리프행어 (Shock & Cliffhanger)

[올드보이]는 ‘문답법 서사’와 '변신 이미지'를 운영체계로 삼아 영화와 관객의 인터페이스를 구축하고 실행파일인 ‘감시 서사’로 관객의 관음증과 노출증의 충돌로 이루어진 욕망의 갈등 곡선을 조종한다. 그리고 세 번째 서사 전술인 ‘경구 서사’로 허구적 스토리에 결핍된 ‘세상의 객관적 재현’의 균열된 틈새를 채워놓는다. 아니 황당무계한 스토리를 다이제스트 역사 다큐멘터리 이미지로 위장한다. 이러한 서사와 이미지 전략이 모두 '그럴듯하지 않은' 서사를 '그럴듯하게' 보여주려는 위장된 표상 전략이다.

그러나 문답법-감시-경구의 서사 전략과 변신-훔쳐보기-다큐멘터리 이미지 전략은 모두 관객의 이성에 호소하는 표상 시스템이다. 관객의 이성과 논리를 관장하는 뇌의 회로를 점거하기 위해 동원된 [올드보이]의 시스템은 이렇게 매우 촘촘하게 코드화된 다음에 모듈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표상적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작용 하는 일종의 디지털 머신을 구성한다. 박찬욱은 [올드보이]를 금융공학에 의해 설계된 옵션거래의 작동원리에 맞추어 설계하고 집행한다.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를 기억하는가? 영화를 만든 스탭들의 직책과 배우들의 이름 그리고 영화의 제목 ‘올드보이’는 먼저 아라비아 숫자의 조합으로 표기되다 빠르게 문자언어로 바뀐다. [올드보이]는 상징화된 화폐를 엔터키 하나로 초국가적으로 연결하고 거래하는 디지털 금융시대의 원리를 모방한 영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21세기 관객들은 밤에는 억압된 욕망의 그림자들의 귀환과 함께 찾아드는 조증(燥症)으로 불안하고 아침에는 안락하지만 억압적인 초자아가 주는 울증(鬱症)으로 외롭다.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의 잠재된 공포 리얼리티와 자연을 대체한 미디어의 가상 세계가 주는 판타지의 연속적인 자극 앞에서 사람들의 감수성은 역설적으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웬만한 자극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사실성에 의존하는 표상 시스템으로는 영화적 최면상태에 빠지지 않는 건조한 관객들을 위해 [올드보이]는 마지막 비장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게 바로 경악 서사와 클리프행어 이미지 패턴이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하게도 또는 공포스럽게도 경악 서사 구조를 DVD 자켓에 장면 선택표로 소개하고 있다.

감독에 의하면 영화는 총 24개의 장면(場面, scene)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공간인 옥상에서의 투신자살로부터 출발하여 감금방은 15년 감금, 일식집 지중해는 부녀 사이의 성적 매혹과 산 낙지 통째로 먹기, 미도의 집에서는 애비가 딸을 겁탈 시도하고, 다시 돌아온 감금방에서는 생 이빨이 뽑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조폭들은 미도의 집을 습격해 애비가 보는 앞에서 딸의 유방을 만지고 강간하려 하며, 상록고등학교의 과학실에서는 오누이가 카메라와 거울을 소품삼아 근친상간 놀이하고, 펜트하우스에서는 혀가 잘리고, 총탄에 머리가 날라 간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인 이국의 설원에서는 애비와 딸이 다시 성적으로 결합한다. 이렇게 영화는 온통 신체 절단과 훼손, 근친간의 매혹과 상간의 금기-위반의 경악 서사로 점철된다. [올드보이]를 새로운 미학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하는 관객들은 사실은 이 끔직한 경악 서사와 이미지 패턴에 양성 반응하는 성적 무능력자들이다.31)

경악 서사를 관객은 클리프행어 이미지 패턴으로 마주한다. 클리프행어는 직역하면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이다. 점점 팔에 힘이 빠져 추락사하기 직전인데 죽은 줄 알았던 악당이 나타나 썩은 미소를 짓더니 구둣발로 손을 짓밟기 시작한다. 관용적인 표현으로 클리프행어는 그래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상황’이나 ‘서스펜스가 계속되는 액션-스릴러 영화’를 가리킨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오대수는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자살하려는 남자를 붙들고 있고 이 이미지는 그대로 서사의 클라이맥스 지점에서 자살하려는 누이 이수아를 댐 난간에서 위태롭게 붙들고 있는 동생 이우진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영화에서 클리프행어 이미지 시스템은 그뿐만이 아니다. '15년 감금의 비밀을 5일 안에 찾아라', '나를 감금 의뢰한 사람을 밝히지 않으면 이빨을 뽑겠다', '아저씨가 갈 때까지 절대로 보라색 상자를 열면 안돼, 미도야!'가 모두 클리프행어 이미지를 부르는 스토리의 구성 단위들이다. 즉 'xxx 까지 ooo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소위 '데드라인'이라 불리는 서사의 모든 족쇄들은 이 이미지 패턴과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민해경의 '보고 싶은 얼굴' 알죠? 그게 신호야. 내가 그거 부르면 아저씨는 바로 준비 들어가 주면 되는 거야'도 경악-클리프행어 패턴의 요소를 이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하고도 심각한 사실은 고등교육을 받은 성인들이, 그것도 세상의 많은 영화들을 섭렵한 영화광들이, 아찔할 정도인 후기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즐기는 쁘띠 부르주와들이 그리고 첨단의 미학적 스타일을 옹호하는 예술의 챔피언들이 이 황당무계한 서사와 선정의 극단을 향해 달리는 이미지를 즐기고 사랑하고 흠모한다는 점이다.

나는 [올드보이] 개봉 이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러한 불쾌하기 그지없는 문화적 재앙을 분석하면서 정신분열증 치료를 위해 세계 대공황기에 도입되기 시작했던 쇼크요법 (Shock Therapy)을 글의 결론 삼아 언급하고 싶다. 쇼크요법은 공복 상태에서 혈당 강하 호르몬인 인슐린을 사용하여 혼수상태에 빠트린 후 포도당을 투여하여 각성시키는 '인슐린 쇼크요법', 강심제 카르디아졸(펜타졸)을 주사하여 심장의 기능을 지배하는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카르디아졸 경련요법' 그리고 전류를 두부에 2-5초 반복적으로 흐르게 하여 경련을 일으키는 전기쇼크요법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주인공 맥머피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들을 말한다.

이들 쇼크요법들은 20세기 중반까지 광범위하게 도입, 실행되었다가 치료 메커니즘에 대한 의문, 치료와 간호 과정의 억압과 강제성 그리고 약물치료의 발전 등으로 현재에는 전기쇼크요법만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 [올드보이]와 관련하여 시사적인 사실은 정신분열증의 초기 증상이 후기 현대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시대의 역병인 조울증(manic-depression)이며 조울(燥鬱)의 시작은 '애먼 일을 당해 원통하여 가슴이 답답하지만 하소연할 수 없는' 억울(抑鬱)) 상태이며 억울한 심정은 세상과 화해할 수 없는 상황과 관련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의 심리 메카니즘은 억울의 상태를 위장하기 위해 (사회적 부적응자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조증을 불러 울증과 혼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추어보면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지금은 정신병동에서도 꺼려하는 쇼크요법 시술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두운 극장에 갇혀있는 '억울한' 관객들에게 처방하고 실행한 것이다. 경악의 서사와 클리프행어 이미지 패턴으로 관객들을 데드라인으로 몰아세워 신체적 경련을 일으켜 마음의 울증을 치료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치료 메커니즘은 금융자본주의 국가가 용인한 도박장인 선물시장의 옵션 상품 거래를 통해 매달 두 번째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영화 [올드보이]와 옵션거래라는 투기적 상품은 일란성 쌍둥이다.



15. 시청자를 판다

탤레비전 광고 시장은 무엇을 팔고 사는 비즈니스일까? 프로그램이라고 답하면 꽉 막힌 모범생이다. 시간이라고 주장하면 조금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멀었다. 정답은 시청자다. 인구학과 경영학이 결합해 만들어낸 목표 소비자층으로서의 시청자 집단, 바로 시청자의 머리수를 팔고 사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뉴스와 드라마를 제작하고 송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광고만 하기 뭐하니까 구색 맞추기로 뉴스와 드라마를 편성하면서 언론사 연, 문화기업 연하는 것이다.32)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 나오는 모든 소품들은 PPL이라 불리는 간접광고다. 주인공역을 연기하는 인기 탤런트의 옷, 목걸이, 귀걸이, 시계, 반지, 양말 그리고 구두 등등이 다 광고다. 그가 아파트에 산다면 모든 가구, 전자 제품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루 바닥재까지 광고다. 그래서 PPL의 총합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이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목표 수치(시청자 머릿수) 보다 낮으면 주인공이 갑자기 사망하거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시청률이 높으면 드라마는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그래서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와 연출자들은 자신들을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밝은 거실에서 가족과 대화하면서 시청하는 그래서 감정이입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쿨 미디어'를 대표하는 매체다. 이에 비해 영화는 어두운 공간에서 관객을 거대한 스크린만을 보도록 의자에 포박하고 대화를 금지하는 관람형식을 강제한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과 스크린이라는 허구세계의 경계가 느슨한 '핫 미디어'를 대표한다. 그런데 대중영화의 제작 여부는 투자액 대비 매출액으로 계산되는 투자 수익률에 의해 결정되며, 이 수익률의 다른 이름이 영화를 오락으로 소비하는 관객의 허구세계를 사실로 오해하게 만드는 '공감도'다. 화폐영화는 여기에 더해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그 작동원리를 모방하는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위험한 유전자변형 상품이다.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실천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올드보이]는 서사와 이미지 표상 시스템을 총동원하여 자본의 작동원리를 모방한 화폐영화다. 그래서 [올드보이]의 감독은 박찬욱이 아니라 투기 자본이다. 이게 금융자본주의다. 이게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화폐영화의 작동 원리다. "지배적인 의견은 어느 시대에서나 지배 세력의 의견이다."라는 오래된 금언은 그래서 계속 유효하다.


주) 

1) 양성희, '양성희기자의 헬로 파워맨, 박찬욱 감독 - "문화 영웅? 흥미로운 작업하는 이상한 놈이죠", 중앙일보, 2007329

2) 이 영화는 성인만 볼 수 있는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상영되었지만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3,269,000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그리고 청룡영화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필두로 대종상 영화제(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백상예술대상(감독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등), 부산영평상(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등),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영평상(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등), 춘사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등), 대한민국영화대상(최우수작품상 등) 등을 석권하였으며 2004년에는 깐느 국제영화제(심사위원 대상)를 수상했다. 또한 IMDB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2000년 이후에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한 탑50 투표에서 27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대학 영화과 학생들이 뽑은 역대 베스트 1위 영화로도 뽑혔다. 

3) 포탈 네이버의 학술자료 검색 서비스에 따르면 [올드보이]에 대한 학술 연구는 이제까지 총 110건이다. 주제별로 살펴보면 예술체육이 53건, 인문과학이 31건, 사회과학 11건 순이다. 예술체육 53건의 연구를 다시 세분해 보면 미술(20), 기타예술체육(15), 예술일반(5), 디자인(5), 영화(4), 의상(2), 연극(1), 건축학(1)로 구성된다. 검색 소프트웨어의 결함으로 영화와 일반 명사를 간혹 구분하지 못하고 분류의 기준도 모호한 점이 있지만 [올드보이]가 광범위한 학술계의 관심 속에 연구되고 분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빌헬름 라이히의 성경제학 이론으로 영화를 분석한 이효인에 의하면 [올드보이]에 대한 논문들은 "영화학계 뿐만 아니라 타 분야에서도 왕성히 발표되었으며, 영화의 서사, 주제 의식, 작가주의, 영화의 스타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효인, '[올드보이]와 파시즘-빌헬름 라이히의 '성경제학 이론으로 본', 한민족연구, Vol.32, 2010
4) 특히 다음과 같은 연구들이 그러하다. 김경애(2004), 「[올드보이]에 나타난 여섯 개의 이미지」, 『문학과 영상』봄,여름호, 문학과 영상학회, 5-23쪽. 박부식(2004), '영화적 환상에 관한 정신분석적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2004년, 백선기․손성우(2006),「영화 속의 욕망, 증상, 기억 및 상흔 -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서사구조, 공간구조 및 시간구조 분석을 중심으로-」,기호학 연구』19집, 한국기호학회, 99-138쪽. 윤일수(2007),「영화, <올드보이>에 담긴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한국문학이론과 비평』, 37집,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447-466쪽. 

5) 임범, '다중인격, 후최면... 감흥없는 흥행안전판', 한겨레 신문, 2005년 3월 10일 

6) 황진미, ‘파시즘에 관한 정치 우화 : [올드보이]의 기꺼이 자기를 잊고 투항하기’, 씨네 21 432호, 2003년 12월 17일자. [올드보이]의 해석에서 평론가 황진미의 평론은 하나의 준거로 남을 것이다. 황진미는 영화 개봉 시부터 [올드보이]가 근친상간에 대한 영화도 아니고, 말에 대한 영화도 아닌 파시스트적인 내러티브라는 점을 간파했다. 그의 글을 이어받아 영화 저널리스트 양성희는 일간지의 칼럼에서 "이 영화에서 감독과 관객이 맺고 있는 관계는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와 숭배하는 자이다. ... [올드보이]의 쾌감은 분명히 파시즘적인 것이다" (양성희, ‘감독의 학대에 뻑간 관객’, 문화일보, 2004년 1월 6일)이라고 썼다. 황진미와 양성희의 글은 대단히 충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올드보이]가 파시즘적 텍스트라는 논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7) 윤일수, ‘영화 [올드보이]에 담긴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37집, 2007년,
    412쪽

8) 윤일수, 앞에 글, 413쪽

9) 윤일수, 앞에 글, 416쪽

10)  박부식, '영화적 환상에 관한 정신분석적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2004년 12월, 115쪽

11) 정봉석, '영화 [올드보이]와 비극 [미토스]의 상호 텍스트성', 현대문학연구, 31집, 2007년, 288쪽

12) 이효인은 필자보다는 훨씬 온화한 방법으로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연구들이 "영화 텍스트의 인물에 대한 지나친 실존인물화 분석, 사회적 맥락의 직접적인 대입, 오이디푸스 신화의 기계적 대입"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올드보이]와 파시즘-빌헬름 라이히의 '성경제학 이론으로 본', 한민족연구, Vol.32, 2010, 190쪽. 

13)  토니 레인즈, '집단적 추종자들을 위한 동정', 씨네21, 2005년 8월 1일 

14) Manohla Dargis, 'The Violence (and the Seafood) Is More Than Raw', The New York Times, 2005년  3월 25일 

15)  임승용, '시작이 반이다 : 기획', 올드보이 북, 197쪽, 올리브 M&B, 2004년  

16)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 법학자 박홍규는 자본은 탐횡이다라고 간단하게 정의하면서, “자본의 물질적 탐욕은 끝이 없고, 그 행동의 횡포성도 끝이 없어서 인간을 자본에 중독된 자본 페인으로 만든다고 일갈한다. [세상을 바꾼 자본], 박홍규, 도서출판 다른,

17) "새로운 금융 생명체는 늘 진화 중이다. ... 모기지 같은 개별 부채를 '조각조각 나눈 후' 재구성한 자산을 한데 묶어 판매하는 '증권화'가 폭발하면서 모기지 담보부 증권, 자산 담보부 증권, 부채 담보부 증권의 연간 총 발행액이 3조달러를 넘었다. ... 2007년말 모든 '장외시장' 파생상품의 명목 가치가 600조 달러에 이르렀다. 1980년대 이전에는 들러보지도 못한 상품들이었다", 니얼 퍼거슨, 금융의 지배, 민음사, 2010, 10-11,

"1980년의 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세계 국민총생산(GDP)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 그러나 1990년에는 금융자산 규모가 GDP의 두배, 2002년에는 세 배로 증가한 다음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직전, 이 비율은 4 배에 이르게 된다. ... 미국의 경우만 보면 20배에 달했다." 김형태, '금융의 미래, 세잔에게 답이 있다', 2013.4.5, 조선일보

18) '화폐영화'의 개념을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1994년에 출판한 [화폐란 도대체 무엇인가](한국에서는 [화폐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2010, 자음과 모음)에서 차용했다. 이마무라는 그 책에서 '화폐소설'의 개념을 제안하는데, 그에 의하면 화폐소설은 "엄밀히 말해 화폐 형식의 소설이다. 화폐 형식이 매개라면. 화폐소설이란 인간관계를 매개로 관계의 안정과 질서 또는 도덕과 규칙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매개 형식을 주제로 한다". 괴테의 [친화력]과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마무라의 '화폐소설' 개념은 근대사회의 특성을 화폐의 매개 형식으로 반영하는 소설로서 상당히 긍정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연구자의 '화폐영화'는 본문에서 밝혔듯이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과 문화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부정적 개념이다.
 
 
19) 세계 최초의 옵션거래는 1973년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콜옵션 거래를 허가하면서 시작되었다. 상장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옵션거래가 인기를 끌자 시카고옵션거래소는 이후 풋옵션 거레를 허용하고 1980년대부터는 채권과 통화 등에 대한 옵션도 발행되어 거래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97년 증권거래소에 세계에서 25번째로 '코스피200'지수를 대상으로 한 '주가지수 옵션시장'이 개장되었고, 1999년 한국선물거래소가 개장되어 '코스닥50'지수 옵션, 미국달러옵션, 국채선물옵션 등이 거래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옵션거래의 역사는 불과 10여년 남짓하다. 시사상식사전, 2013, 박문각
 
 
20) 곽세연, '금융위 발표로 본 '옵션테러' 전말', 연합뉴스, 2011223; 니얼 퍼거슨에 의하면 "지난 4000년간 지구에서 생각하는 인간이 부상해 왔다면, 이제는 금융업을 일삼는 인간이 부상 중"이지만 "금융기관에 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책, 11;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다음 독설은 아주 불편한 진실이다. - "은행은 맑은 날에는 고객에게 우산을 빌려주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뺏는다."
 
 
21) NH농협증권 사이트의 투자교실 페이지에서 인용, https://www.nhis.co.kr/index.jsp?iid=WS4004
 

22) 선물상품(先物商品)을 영어로 'Futures', 선물시장을 ‘Futures Market'라 한다. 금융자본주의에서 미래는 시간의 미래가 아니라 상품 가격의 미래다.

23)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선물 거래소는 1848년에 설립된 시카고 상품 거래소다. ‘미국 중서부 곡창 지대의 중심에 위치한 시카고에서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수급상의 문제와 창고 부족 및 수송 수단 미비 등 여러 가지 비능률적이고 불합리한 유통상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고, 새로운 상거래 방식을 통하여 곡물의 수급과 유통의 원활성 및 효율성을 높여 보자는 목적으로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선물 거래소라고 일컬어지는 시카고 상품 거래소를 설립하였다.’ -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 사전, 이상수, 2006.10.30

24) 세계 선물 시장의 규모는 세계 금융시장 규모의 세 배에 해당하는 600조 달러이다. 2013. 8. 30, 중앙일보

25) 경제학사전, 2011.3.9, 경연사

26)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문장에서 목적어 ‘나를’이 주어 ‘나는’ 보다 선행한다.

27) 존재의 유무를 따지는 철학적 접근은 사실 한가롭고 현학적이다. 앞에서 예로 든 빼빼로데이 옵션테러사건처럼 국제 금융기관은 범죄행위를 하나의 경영기법으로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어두운 조직이기도 하다. 또 무속인의 자문을 받아 회사 자금을 횡령해 선물상품에 투자했다가 거액을 날리고 쇠고랑까지 찬 독과점 재벌 SK 회장 사건은 인간의 탐욕과 허약함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28) 황진미, 앞에 글, 2003년 12월 17일. 이효인은 [올드보이]를 파시스트적 텍스트로 해석한 황진미의 논점을  2010년에 쓴 논문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전개하고 있다. 즉 그는 빌헬름 라이히의 오르가즘 이론에 근거해서 “성적인 억압과 트라우마로 파시스트적 인물이 된 이우진의 정신병이 오대수에게 전이되는 텍스트”로 해석한다. 이효인, 앞에 글, 209-210쪽

29) 프랑크푸르트 학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의 핵심도 평등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통한 합리성에 기초한 사회 건설이다. 사실 서구 민주주의 제도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두 정파의 대화를 통한 권력 투쟁에 기초한다. 그래서 서구 의회 민주주의의 별칭이 '숙의(熟議) 민주주의''다. 

30) 양성희, 앞에 글, 2004년 1월 6일

31) 대상관계 이론을 정립한 정신분석학자 오토 컨버그는 성불능과 발달 장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 머무는 인간의 능력을 서술한) 연속체의 첫 번째 국면은 어느 누구와도 성기적이며 부드러운 관계를 확립하지 못하는 전반적인 무능력과 관련된 것으로서 대부분의 심각한 자기애적 성격이 여기에 속한다. 성적 문란으로 특징지어지는 두 번째 국면은 중간 정도의 장애를 지닌 자기애적 성격과 관련 된다. 애정 대상을 원시적으로 이상화하는 것과 어느 정도 성기적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으로 특징지어지는 세 번째 국면은 전형적으로 경계선 성격 조직과 관련된다. .... 이 연속체의 마지막 단계인 다섯 번째 국면은 부드럽고 안정적이며 깊은 대상관계를 맺는 능력과 성기적 성이 정상적으로 통합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토 컨버그, 대상관계 이론과 임상적 정신분석,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3년, 217쪽

32) B.M. Owen, S.S. Wildman, Video Economics, Harvard Univ. Press, 1992, 3쪽, 커뮤니케이션 경제학자인 오웬과 와일드맨에 의하면 “텔레비전 산업 연구자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심각한 오류는 광고에 의존하는 텔레비전 방송국을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사업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방송국들은 '시청자를 생산하는 사업'(business of producing audience)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