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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영화 <반두비>, 쥐 표현 때문에 외부압력 19금 판정 취재수첩 | 2011/08/31 18:51

 영화 <반두비>의 한 장면/ⓒ인디스토리


2009년 19금 등급으로 개봉됐던 영화 <반두비>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등급심의 과정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쥐' 표현이 문제가 돼 외부의 압력에 따라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이 나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일 경우 정치적 입김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등급 심의에 관여했던 영화계 관계자 A씨는 지난 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반두비> 때는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어쩔 수 없었다”며 “당시 어느 쪽에서 누구로 부터 연락이 왔던 것까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임명권한을 갖고 있는 쪽에서 연락이 온 듯했고, 그러다보니 심의 과정에서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됐었다”고 말했다. 

그는 “쥐박이라는 표현이 조금 나오면 어떤가. 특별하지도 않은 부분인데, 위에서는 예민하게 생각한 것 같다”면서 “당시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찌 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영화가 촛불시위 내용을 그리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고 있는 것이 등급 심의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으로, <반두비> 장면 중에는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었다가 망했다”는 대사와 한 남자가 “왜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이 ‘쥐’인지 아느냐”며 비아냥거리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전주영화제 당시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주연배우 박혁권, 마붑알엄과 신동일 감독


2009년 개봉됐던 영화 <반두비>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고생 간의 소통과 교감을 그린 영화로 당시 처음 공개된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12세 관람가로 상영됐다. 그러나 개봉을 앞둔 등급심의 과정에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이 났고, 감독과 제작사가 재심의를 신청했으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 덕분에 흥행 가능성이 예상됐던 영화는 19금 벽 앞에 흥행에도 참패했다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 측은 극중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여고생이 스포츠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모습과 선정적인 대사가 모방위험이 있다는 사유 등을 들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고, 재심의 과정에서 선정성과 대사는 15세 이상 관람가로 판정했으나 다른 항목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유지했다. 

<반두비> 제작진은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이 선정성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반정부적인 유머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일부 언론들도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으나 영등위 측은 전혀 관련 없다고 부인했었다. 

당시 지명혁 영등위원장은 한 언론을 통해 “등급 심의에 보수·진보가 있을 수 없고.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의 두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반두비>가 정치적인 이유로 심의에 불이익을 겪은 것이 아닌 “여고생이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장면이 문제됐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외부 압력으로 등급 심의가 결정됐다는 증언이 나옴에 따라 영등위가 정치적 잣대로 영화 등급을 정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이와 관련, 인디스토리의 관계자는 "당시 그랬을 거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영등위의 공문 외에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영화 반두비의 한 장면/ⓒ인디스토리



하지만 A씨는 동성애 문제를 다룬 작품들에게 19금 판정을 내리는 영등위의 등급 결정에 대해서는 “학생 자녀를 둔 40~50대 심의위원들이 민감하게 생각한다. 정작 학생들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분들이 아이들 정서에 안 좋다고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별 것 아니게 넘어갈 수 있는 내용도 언론을 통해 이슈화 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에 항의해 법정소송까지 갔던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사이>를 언급하며  "영등위 심의 결과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논란이 커진 측면이 있고, 결과적으로 감독과 영화를 띄워준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